재작년 요맘때 짧았던 인턴생활을 마치고 취업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대부분 취준 기간이 그러하듯 한가로우면서도 불안한 나날이 이어졌다. 불안함을 잠재우려고 부단히 노력했는데, 그중 집안일이 가장 큰 도움이 됐다. 많은 생각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여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시 일을 쉬고 계시던 엄마를 도와 같이 청소하고, 장보고, 요리하는 반복된 일상이 큰 버팀목이었다. 그중에서도 요리하기 전 재료를 다듬는 시간이 가장 좋았다. 재료를 다듬으며 시시콜콜하게 나누는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있었다. 원래 맥락 없는 대화가 제일 알찬 법이지 않은가.

어느 날 고구마 줄기를 다듬던 중이었다. 다른 재료에 견줘 어렵지도 않고 눈이 따갑지도 않아 신나서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나 엄청 빠르게 잘하지?" 달뜬 목소리로 물으며 쳐다본 엄마 얼굴은 상기된 상태였다. 금세라도 터질 듯한 얼굴로 울음을 참는 모습이었다.

엄마는 어릴 때 종종 외할머니와 같이 고구마 줄기를 다듬었다고 한다. 고구마 줄기를 좋아하는 외할머니랑 자주 고구마 줄기 반찬을 만들려고 재료를 다듬으면서 이야기를 나눴단다. 기자에게도 이 소소한 시간들이 큰 힘이 됐던 만큼 엄마에게도 그런 듯하다. 엄마는 날마다 반복했던 일상이었는데 왜 이렇게 그리운지 모르겠다며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그때는 지나갈지 몰랐다는 말도 덧댔다.

엄마가 그렇게 우는 모습도 마음이 아렸지만, 기자가 겪는 지금 이 시간도 지나간다고 생각하니 새삼 아쉬웠다. 그저 우는 엄마를 안아 주면서 괜찮다고 다독일 뿐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아무런 도움도 안 되지 싶었다.

간절하게 붙잡고 싶은 시간도 있고, 기억조차 나지 않게 지워 버리고 싶은 시간도 있다.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더 소중하구나, 하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어쩌면 기억하고 싶고 붙잡고 싶은 그 무엇은 시간이 아니라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떤 시간을 어떻게 보내든 함께하는 사람이 중요하지 않을까.

얼마 남지 않은 올해, 멈추지도 빨리 감지도 못하는 시간 속에서 자신의 사람들과 더 긴 시간을 보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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