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파산 신청 법인이 3분기까지 1천213건으로 집계됐다. 아직 3개월이 남았는데, 근래 10년간 가장 파산 건수가 많은 2021년(1천69건) 기록을 훌쩍 넘어섰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고금리·고환율·고물가로 한계에 몰린 자영업자와 영세 중소기업일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앞으로다. 그간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경영난에 도움을 준 정부 지원과 기금이 거의 소진됐다.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사태 등 국제 정세는 갈수록 불안정해지고 국내 경제도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경기 악재가 지속되면 건실한 기업들까지 영향을 받는다. 지난달엔 위니아전자를 포함한 중견기업 3곳도 경영난을 이유로 법원에 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그나마 코로나 때는 풍부한 재정과 저금리 대출이라도 있어 버틸 만했다. 지금은 그런 공짜 점심과 진통제도 없다. 이제부터라도 할 일을 해야 한다. 혈세를 좀먹는 좀비기업은 정리하고, 생존 가치가 있는 기업은 구조조정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이 과정을 이끌어야 할 기업구조조정 촉진법(기촉법)이 지난달 일몰제로, 그 어떤 대안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외환위기를 거치며 한시법으로 제정한 기촉법은 그간 국회에서 6차례 연장 적용했다. 기촉법이 없으면 법원을 통한 회생과 파산밖에 없다. 모두 사후 조치다. 한마디로 기업이 한계 상황에 빠지기 전 시도해야 할 사전적·예방적 차원의 구조조정은 불가능해진다는 뜻이다. 국회가 일부러 이렇게 한 건 아니다.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미처 막을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민생만이 정치의 존재 이유’라고 외쳐 댄다. 이런 현실을 비웃기라도 하듯 9월 파산 신청 법인도 올해 최대치를 경신했다.

국회는 신속히 기촉법을 재제정해 기업 개선 작업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 건실한 기업들까지 줄도산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한다. 이번 기회에 기촉법을 장기 관점에서 업그레이드하는 작업도 시작했으면 한다. 개선이 필요한 다수 기업이 부실 징후 기업 지정과 낙인 효과에 따른 경영상 애로, 진행 과정에 수반되는 행정적·법률적 부담으로 신청을 주저하고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부분까지 개선해야 조기 진단이 가능하고, 가래로 막을 걸 호미로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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