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진 인하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정혜진 인하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현재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으며, 2050년에는 65% 이상이 도시에 살게 될 것이라고 예측된다. 몰개성한 고층건물들로 이뤄진 도시는 필수불가결한 환경이 됐음에도 왜 우리 대다수는 감정과 창의성을 고양시키지 못하는 질 낮은 경관의 장소 속에서 살아야만 할까?

공간환경에는 인간의 감정과 건강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강력한 힘이 있다. 창 밖 풍경이 다르면 병이 낫는 속도도 달라진다는 것을 밝혀낸 1984년의 로저 울리히의 기념비적 연구는 인간의 마음과 건강에 미치는 공간환경의 중요한 영향력을 강조한다.

"우리는 건물을 만들지만, 건물은 다시 우리를 만들어간다"는 유명한 윈스턴 처칠의 경구는 공습으로 파괴된 하원의사당 재건 디자인의 정수는 ‘대립하며 마주 본 의자배치’가 상징하는 영국의회 민주주의는 양당 체제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한 말이다.

신경건축학자 에스더 M. 스턴버그에 따르면 어떤 장소에 대한 기억은 우리가 자아를 감지하는 데에도 결정적 역할을 한다. 최근 밝혀진 바에 따르면 뇌 속 해마에 있는 별세포(astrocyte)는 행복한 느낌을 가졌던 장소를 기억한다. 행복한 감정을 느낄 때 우리 뇌는 엔도르핀을 분비하는데, 이 엔도르핀이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별세포로 가서 ‘뮤 오피오이드 수용체’를 활성 시키고 이것이 행복한 감정과 장소를 연관해 동시에 기억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별세포는 장소세포(place cell)라고도 불린다. 즉, 어떤 장소의 질은 인간경험의 질을 결정한다.

"카라칼라 욕장을 보라. 목욕탕 천장높이가 45m가 아니라 2.5m라고 해도 목욕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안다. 그러나 45m라는 높이는 우리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 이는 건축가 루이스 칸이 공간의 힘에 대해 강조한 말이다. 높은 천장고는 자유의 느낌을 확장시키고, 자유롭다고 느끼는 사람은 추상적인 개념에 더 잘 반응하고 창의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바다.

건축가 칸은 이러한 믿음으로 Salk Institute를 설계할 때 자연풍광을 극대화 하도록 건물을 배치하고, 3m라는 당시에는 매우 높은 천장고를 가진 연구실 공간을 제공했다.

반면 날카롭고 불규칙적인 요소를 접하면 인간은 불편함, 가벼운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디자인할 때, 방문자가 당시 희생자들이 느꼈을 법한 고립감과 절망, 공포를 경험하도록 불안정하게 기울어진 벽, 불규칙적인 상흔처럼 찢겨진 벽의 개구부, 어두운 무채색의 채택 등을 적용했다.

공간의 색깔 또한 인간에게 큰 영향을 준다. 사방이 붉은 환경에서는 뇌하수체가 자극을 받아 혈압과 맥박이 상승하고 근육이 긴장하며 땀샘이 활발하게 활동하게 된다. 붉은색 방에서 시험을 본 사람들은 더 낮은 점수를 받았으며, 천장을 하늘색으로 칠한 방에서 IQ검사를 치르면 더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하루 대부분을 무채색의 실내환경에서 보내야 하는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보게 하는 지점이다. 건축과 행복의 관계를 고찰한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건축과 환경의 아름다움은 분명 우리 감정을 분명하게 고양시키며 우리를 둘러싼 물질적 형태들의 배치가 진정한 자아의 실종을 막아주길 기대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희구하는 것은 애착을 갖고 자주 접하는 장소다. 그러한 바램과 달리 우리는 언제까지 숫자적 이윤 논리와 일회적으로 눈에 띄는 상품성으로만 생산되는 환경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할까?

철학자 한병철은 우리 시대의 병증은 우울증과 공황장애와 같은 정신병이라고 말한다. 공간환경이 인간의 마음과 신체에 주는 영향을 고려하면 과연 맞는 말이다. 주말이면 풍광이 좋은 곳,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인스타그래머블한 장소로 몰려드는 것은 그때라도 잠깐 숨쉴 곳을 찾아야 하는 우리 현실의 반증이다. 만약 일상적인 도시생활공간에서 수시로 우리의 감정을 고양시키는 다채로운 장소와 자연들을 접할 수 있다면 어떨까. 삶을 형성하는 공간의 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시점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