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고전문학이란 예부터 전해오는 가치 있고 훌륭한 문학을 말한다. 한국의 옛 소설 「춘향전」, 「심청전」, 「홍길동전」이나 옛 시조 ‘탄로가’, ‘하여가’, ‘단심가’ 같은 작품이 이에 해당한다. 또 저자가 알려졌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 가운데 익히 저자가 알려진 최초 한글소설 허균의 「홍길동전」이나 포은 정몽주의 시조 ‘단심가’의 원저자가 따로 있다는 주장이 관심을 끈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시조 ‘단심가’는 14세기 말 지어진 것이 아니라 그보다 860여 년 앞선 6세기 초엽 작품이라는 글이 있다. 이는 1948년 발간한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 나와 있다. 일제강점기인 1931년 조선일보에 연재했으니 90여 년 전 일이다. 나는 평소 이 책 내용 중 5쪽 분량의 그 부분을 예의·주목했다. 

‘안장왕의 연애전과 백제의 패퇴’라는 단락에는 백제 개백현(지금의 고양시 행주산성 인근)에 살던 미녀 한주(韓珠)가 개백 태수의 청혼을 거절하고, 청춘 시절 서로 언약한 고구려 22대 안장왕을 사모해 옥중에서 지어 불렀다고 한다. 단재는 포은이 이 한주의 ‘사랑가’를 인용해서 태종의 ‘하여가’ 대답으로 불렀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고대 삼국시대 ‘사랑가’가 900년 후 중세 여말의 ‘충절가’로 바뀐 셈이다. 

지금은 없어진 삼국시대 자료 문헌 「해상잡록」에서 구체적 내용이 인용됐다. 오늘날까지 여러 매체에서 이를 묘사해 보도하거나 때로는 원저자 문제를 거론한다. 생각건대, 이게 사실이라면 한주도 어쩌면 더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그 ‘사랑가’를 외웠다가 절체절명 위기 시에 꺼내 읊었는지 모르겠다.

또 「홍길동전」을 보면 2019년 최초 한문소설이 발굴됐는데, 저자는 허균이 아니었다. 1628년 황일호가 쓴 「노혁전」이 그것이다. 이를 발굴한 이윤석 전 연세대 교수는 한글 「홍길동전」은 1800년 무렵 창작한 작자 미상 작품이라 했다. 이보다 먼저 1996년 서경대 이복규 교수는 최초 한글 필사본 소설 「설공찬이」를 발굴했는데, 허균의 한글 「홍길동전」보다 100년쯤 앞선 16세기 초 쓰인 거라 했다. 반면 오늘날 통용되는 한글 「홍길동전」은 이본일 뿐, 원본이 발굴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허균의 작품이라는 게 학계의 주류다. 

허균이 먼저 한문 「홍길동전」을 지었을 거라는 주장도 있다. 또 「춘향전」은 실제 얘기였다고 해서 화제가 된다. 당시 봉화 출신 암행어사 성이성과 남원의 관기 춘향의 애틋한 연애담이라는 게 많은 근거 자료로 밝혀졌다. 1756년 남원 출신 양주익이 쓴 「춘몽연」이 「춘향전」의 고본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고전문학 작품은 원저자 불명이거나 시비가 따르는 경우가 상당하다. 설사 원저자가 있었다 해도 시대 여건상 금서 지정, 수집 소각 폐기, 일실 등 당시 국가적·개인적 악조건 상황으로 묻혔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런 고전들은 내용이 똑같지 않은 여러 판본이 존재해 여태껏 연면히 살아 기능한다. 발생 지역의 고사·민담·구전설화 따위를 바탕으로 역사적 사실이 더해지거나 그 반대인 경우를 포함해 최초 어느 작가가 창작했을 것이다. 이를 기본 텍스트로 해 각양각층 후세 사람들의 첨삭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오늘날 시조창·연극·영화·창극·판소리·가곡·애니메이션 따위로 시대에 맞춰 끊임없이 진화하는 한류문화 종합 콘텐츠라 하겠다. 만약 뒷날 원저자로 밝혀진 이도 이전 전래 내용들을 기초로 했다면 ‘편저자’라고 하는 게 더 타당할지 모른다.

문학작품에 완전 창작이 있을까. 자신이 창작했다고 생각한 작품이 이미 타인이 한 거여서 모방을 넘어 표절 혹은 위작으로 몰릴 수도 있다. "우리 국문학 유산의 잔재는 믿을 수도 있고 믿지 않을 수도 있다. 국문학 유산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국문학 유산은 유산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런 고전문학 작품은 국문학 유산이다. 원저자 시비에만 머무르지 말고 온누리로 비상하라. 대서사 시조나 연작 시조로도 써봄 직하지 않은가. 단시조 올린다.

- 불후작의 의미 -

원저자 시비 넘어
거론마저 없을수록
 
오히려 더 명작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
 
아리랑
그 큰 울림이
온 겨레의 노래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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