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예야, 넌 너무 자세하게 쓴다." 기사에 범행 방법을 너무 자세히 쓰지 말라는 취지로 국장이 넌지시 주의를 줬다.

‘손도끼로 목 부위를 내려쳐 절단해 살해한 혐의’라고 쓰면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혐의’로, ‘바늘로 허벅지 부위를 200여 차례 찔러 학대했다’는 문장은 ‘흉기를 마구 휘둘렀다’는 식으로 수정을 거쳤다.

부장 또한 "손도끼인지 바늘인지 상세히 쓰지 말라"고 조언했고, 대부분 범행 방법은 ‘흉기(둔기)를 휘둘렀다’는 말로 압축했다. 디테일을 생략하지 않는 서술법은 말하자면 버릇이었다.

평소 가던 길 반대편으로 향하던 퇴근길에 "어디 가느냐"는 선배 질문에 "햄버거가 먹고 싶어서 롯데리아 가요"라고 답했고, 업무 용건으로 전화한 선배가 인사처럼 건넨 "밥은 먹었냐"는 물음엔 "어제 술을 많이 마셔서인지 속이 안 좋아 건너뛰려고요"라고 했다. 하루는 "사무실이냐"고 통화 서문을 연 다른 회사 선배에게 "오늘 연가라 집입니다"라고 답했다가 "그 부분은 내가 알 바 아니고"라는 일침을 듣기도 했다.

의례상 지나가는 대화에도 적당히 얼버무리는 법을 모르고 자세한 정보를 나열했다. 그러지 않으면 스스로 정직하지 못한 듯 찝찝함이 일어서였다.

어쩌면 기자는 ‘필요없는 정보’란 뜻을 가진 속어 ‘TMI(Too Much Information)’가 딱 가리키는 인물일지 모른다. 그러나 정보 필요를 따지는 기준은 무엇일까. 대화술이 아닌 직업윤리 차원에서 묻고 싶다.

지난 7일 방청한 ‘인천 스토킹 살인’ 3차 공판에선 생생한 범행 당일 기록을 살피는 서증조사를 진행했다. 피고는 30㎝ 길이 회칼로 누운 피해자 가슴 부위를 깊이 찔러 등까지 관통했다. 차 트렁크엔 여분의 칼이 하나 더 있었다.

범행 9개월 전 통화에서 그는 "나한테 왜 이러냐"고 되레 피해자를 원망했다. 모든 상세한 정보가 한데 모여 강력한 살기와 준비성과 열등감을 지닌 가해자를 여과 없이 그렸다.

통화 녹음에 담긴 고인 목소리와 방청석에 앉은 유족의 붉어진 얼굴이 기자에게 적나라한 슬픔을 안겼다. 돌아간 피해자를 기리며 울분이 치밀었다. 정보가 이끌어 낸 눈물이었다.

범죄 잔혹성을 전시하는 일은 경계해야 마땅하나, 이런 정보가 정말 알(릴) 필요가 없는 부분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신입 기자에게 남은 고민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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