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주 변호사
박노주 변호사

"태양은 이 세상을 어둠이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헤밍웨이)

사람들의 모습이 다르듯 생각도 각기 다르다. 이렇게 다양한 생각들을 잘 규합해 최고의 공동선을 모색하는 제도가 민주주의다. 이를 위해 다양한 생각들은 악의가 없는 한 모두 존중돼야 한다.

다양한 의견을 토대로 합리적 의견을 도출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각자 의견은 타인에게 쉽게 이해되기는 어렵다. 복잡한 사고체계에서 도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자 의견을 타인에게 이해시키거나 설득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이러한 절차를 거쳐도 의견 통일이 안 되면 다수결 원칙에 따를 수밖에 없다. 다수결 원칙은 최후의, 그리고 불가피한 수단이어야 한다.

진실이나 진리는 다수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다수 의견이 개인 의견보다 합리적일 가능성이 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다수결에 의한 결정은 어쩌면 다수의 이기심의 승리라고 할 수도 있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고 상당히 이기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다수결 원칙은 불가피한 선택일 뿐이다. 따라서 다수결을 이유로 타인을 비난하거나 정당한 보상 없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 다수결 원칙에 묻혀진 소수자 이익이 소홀히 되는 점은 없는지 항상 살펴봐야 한다.

어쩌면 소수자나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나 존재 이유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강자는 국가 도움이 없더라도 자신의 이익 보호에 문제가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수결은 정의나 진리를 오도할 수 있다. 선동가에 의해 자신의 의견을 국민의 뜻이나 정의로 포장하는 데 이용되기도 한다. 가령 노동권 보장을 이유로 불법적인 쟁의행위에 대한 사용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제한하고, 더 나아가 불법을 자행한 임원이나 조합원을 면책시키는 입법을 한다면 이는 다수결의 폐해다. 불법을 조장하고, 특권층을 양산하며, 헌법상 기본권인 재산권 보장을 부인하는 악법이다. 이는 소수자뿐 아니라 국민 모두를 파멸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를 주도하는 사람들이나 단체가 있다면 이성적이지 않다. 이에 박수를 치거나 방관한다면 그 사회 미래는 칠흑같이 어둡다. 우리 사회는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비이성적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으리라 믿는다.

선출직 공직자가 정실이나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인사권을 행사하는 경우 민주주의 이념에 반한다. 선출직 공직자는 위임 취지에 따라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위해 인사권을 행사해야 하는데 이에 반하는 행위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나라가 번영하기는 어렵다.

복잡한 세상에서는 오히려 플라톤의 철인정치와 같이 소수의 현자에 의해 인도돼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양의 탈을 쓴 사람이 많아 현자 여부를 판단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는 것이 문제다.

생각을 표현하는 사람 자신은 표현 방식을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같은 내용이라도 표현 방식에 따라 공동선 창출에 오히려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표현은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공감을 구하는 데 목적이 있임을 고려해야 한다.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독재정치를 합리화하는 도구로 악용되기도 했다. 독재자는 국민이나 정의를 들먹이며 이를 독재의 포장지로 사용했다. 국민이 깨어 있지 않으면 이러한 역사는 반복된다.

탈무드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 모르면서 보고 있는 사람, 어디에 서 있는지 모르면서 서 있는 사람은 불행하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많으면 자신들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 전체를 불행하게 하는 것이다. 도구나 좀비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은 그 수혜자를 점차 무능력자로 만든다. 애완용 동물과 같은 이치다.

현재 민주주의를 표방하지 않는 나라는 거의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 이념이 잘 지켜지는 나라도 거의 없다. 비록 공식적으로 표방하지는 않지만 민주주의는 허울뿐이고 독재정치가 뿌리내린 국가도 많다. 이러한 나라의 위정자들은 타국을 침략해 국민의 눈을 외부로 돌리려 한다. 국민들은 할 수 없이 전쟁에 휩싸인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세계 평화의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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