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박노해 시인은 ‘너의 하늘을 보아’라는 시에서 슬픔과 고통 속에서 힘겨워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위로해 줍니다.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네가 꽃피워 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가만히 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가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하늘이란 무엇을 뜻할까요. 저는 ‘살아서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꿈은 도달해야 할 목표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때론 길을 잃고 방황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는 것도 그 꿈이 있기 때문이라고요.

그러나 아무리 목표를 잊지 않는다고 해도 쓰러지고 넘어져 상처가 깊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영혼의 산책」(박원종)에서 저자는 그 상처마저도 껴안고 사랑하라고, 그래야 그 상처가 여물고 결국 아름다운 꽃을 피워 낸다고 일러 줍니다.

"병들고 못난 자식에게 정을 쏟는 엄마처럼 상처와 아픔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사랑해야 한다. 아픔의 껍질이 크고 단단할수록 그리고 아픔의 뿌리가 깊으면 깊을수록 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 마음의 상처나 아픔을 박힌 가시를 뽑듯 단번에 확 빼내는 게 아니라 사랑으로 서서히 녹여 내야 한다."

상처라는 이름의 가시가 온몸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어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 때 가시를 탓하며 화를 내고 울부짖어본들 가시만 더 깊이 박혀 더 큰 고통만이 기다릴 뿐이겠지요. 그러나 이미 박힌 가시를 하나하나 뽑아낼 때는 아프겠지만 결국 치료가 될 겁니다. 그래서 저자는 상처와 아픔까지도 ‘사랑’으로 마주하고 안아 주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가시를 뽑아내는 것이니까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슬픔과 아픔을 안고 살아갑니다. 다만, 그 아픔이 누군가에게는 도약의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더 깊은 절망 속에서 살아가게 합니다. 물론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순전히 각자의 몫이겠지요.

그렇다면 고통 앞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로 임해야 전자의 삶을 살아갈까요. 저자는 새 이야기를 통해 그 방법을 알려 줍니다.

만물이 생겨날 때 새에게는 날개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새는 신에게 하소연했습니다. 사자에게는 강한 힘이, 뱀에게는 독이, 말에게는 튼튼한 다리가 있어 자신을 보호할 수 있지만,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없어 늘 위험하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신은 새에게 날개를 달아 줬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새가 다시 와서 투덜거렸습니다. "공연히 이 날개를 달아 주셔서 짐만 됩니다. 날개가 있으니 몸이 무거워 전보다 오히려 빨리 달릴 수가 없습니다."

그때 신이 말했습니다. "이 어리석은 새야! 너는 어찌하여 날개를 지고 달리려 했느냐? 날개는 지고 달리라고 있는 게 아니라 그걸 이용해 저 하늘을 높이 날라고 있는 것이거늘."

맞습니다. 힘은 ‘불편함’에서 나오고, 기회는 ‘어려움’에서 나옵니다. 불편함과 어려움을 극복해 가는 힘든 과정이 지나고 마침내 극복했을 때 우리는 뜻밖의 선물까지 받게 됩니다. 바로 ‘도약과 성장’ 그리고 ‘지혜’입니다.

날개가 거추장스럽고 무거운 짐인 것은 맞지만, 그 무거운 짐이 사실은 하늘을 날게 하는 숨겨진 힘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고통과 슬픔이라는 ‘짐’에 초점을 두면 우리는 영원히 날지 못합니다. 그러나 ‘힘’에 주목하면 그때부터는 그토록 걸림돌이라고 생각했던 짐이 놀랍게도 디딤돌로 보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고통과 슬픔이 빚어 내는 아름다운 꽃을 보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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