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물가가 정부 예상을 뛰어넘더니 심지어 미국 물가까지 추월하는 일이 발생했다. 추세가 심상치 않다. 전년 동월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7월 2.3%에서 8월 3.4%, 9월 3.7%, 10월 3.8%로 3개월 연속 상승세다. 식생활과 직결된 농축수산물도 7.3%로 올해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소비자단체는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고 지적한다. 기업들의 ‘꼼수 인상’으로 정부의 물가 안정책까지 무력화된다는 것이다. 급기야 정부도 17일 ‘슈링크플레이션’을 공식 안건으로 상정해 논의했다고 한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줄어들다’는 뜻의 슈링크와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다. 제품 가격은 그대로 두고 수량·크기·품질을 낮춰 판매하는 행위를 말한다. 지금처럼 경제위기나 물가 상승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많이 나타난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다. 소비자는 가격 변화에 가장 민감하다. 즉, 직접적으로 가격 인상을 단행할 경우 소비자의 강력한 저항, 예컨대 단기적으로는 구매 취소, 장기적으로는 부정적 평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회피하고자 우회적으로 가격을 인상하는 게 슈링크플레이션 전략이다.

기업 처지에선 시장 변화에 따른 합리적 대응이라 볼 법하다. 재료·운송·노동비용 상승을 판매분에 전가해야 손실을 최소화하고 이익을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자 편에선 얘기가 달라진다. 슈링크플레이션에는 ‘우회적이고 간접적이며 은밀하게’ 물가를 끌어올리는 개념이 담겼다. 따라서 이런 현상을 방치하면 기만적 관행이 확산될 테고, 그렇다고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면 시장경제를 훼손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합리적인 해결책은 있다.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정보 수준을 강화하면 된다.

그런 측면에서 정부의 늑장 대응과 비합리적 접근은 아쉽기만 하다. 이미 기록적인 고물가 상황이 펼쳐진 지난해부터 슈링크플레이션은 가공식품 부문에서 보편적인 마케팅 방식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정부 차원의 고민이나 대안 마련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10월부터 물가상승률이 완화될 거라는 경제부총리의 ‘10월 안정론’만 반복 재생됐다. 그래 놓고 문제가 되니까 "슈링크플레이션은 정직한 판매행위가 아니라 생각한다"며 기업을 비난하는 모드로 돌아섰다. 이런 자세가 시장경제를 훼손하는 행위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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