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동
이강동

수년 전 단군문화포럼과 단군학자료원 주관으로 색동옷을 입은 단군 영정을 공개하는 전시회가 서울 천도교 본부에서 열렸다.

이는 1883년 시주한 그림으로 밝혀졌는데, 충청남도 문화재로 지정된 부여 단군 영정보다 오래된 것이다.

단군(아호, 이름:환왕검)은 나라를 건국하고 국호를 조선이라 했다. 조선과 동명은 태양의 국토임을 표현한 것이다. 태양이 떠오르는 나라라고 해 중국 고대 국가에서 조선과 함께 일역·일출·일동이라는 별호로 지칭했다. 

우리 고대 선인들은 생명과 광명의 상징으로 여겼던 태양과 별에 제례를 올렸다. 태양과 별은 부활을 의미했다. 

선인들은 태양·별·달·바람·비 등 천체의 현상과 변화는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길흉의 경고로 믿었다. 농경사회일수록 날씨 영향으로 풍요와 흉작이 좌우되는 일이라 하늘에 제례를 올리고 기원했다. 별과 달의 빛으로 한 해 농사를 점치기도 했다.

왕들도 봄과 가을 제단을 찾아 나라의 번영과 민중들의 복록을 기원했다. 함흥 연포 부근에 제성단이 있다. 함흥 10경이다. 고려 때 이성계가 자주 찾아가 저녁 하늘 서쪽에서 반짝반짝 밝게 빛나는 태백성에 제례를 올렸다. 

단군은 아들 셋을 강화 마니산으로 보내 제천단을 축조하게 했다. 삼랑성 참성단으로 불렸다. 참성단은 아들들이 완성시키지 못하고 손자들이 완성했다고 한다. 정족산성도 당시 축조했다. 단군 조선에서 시작된 제천의례는 후예들인 동이·부여·예맥·삼한·고구려·신라·백제·발해·고려·조선에 이르기까지 이어졌다.

동이와 부여는 5월, 삼한은 5월과 10월, 고구려 10월, 신라 5월, 백제 정월과 10월, 고려 동짓달, 조선은 봄과 가을에 제천의례를 했다. 음악·무용·제례음식을 준비해 하늘에 제례를 올렸다.

단군의 유적은 여러 곳이 있다. 백두산·묘향산·구월산·지리산·평양·평안도·중국 하남성·내몽고 지역에 있다.

백두산은 단군 조선의 발상지다. 우리 민족의 신앙적 대상지이기도 했다. 조선과 만주 경계에 솟은 장태산(비백산)을 백두산으로 아는데, 이는 별개의 산이라고 한다. 1767년 좌의정 한익모가 임금에게 상주해 장백산으로 개칭했다.

묘향산은 태백산·향산이라고도 불렀다. 평안도 관서지역 영변과 희천에 있는 묘향산에 단군이 생활하던 석굴이 있다. 

구월산은 아달산이라고도 했다. 단군이 평양에서 구월산으로 와 생활하다 신이 된다. 나이가 1천48세, 1천98세라는 문헌이 있다고 한다. 환인~환웅~단군을 모시고 제례를 올리는 삼성사가 있다. 구월산은 단군 유적이 많은 곳이다. 

지리산 천왕당도 단군과 관련 있다고 한다. 평양 숭녕전도 단군과 인연이 있는 곳이다. 중국 대륙 하남성~만주~내몽고 지역이 동이인·고구려·예맥·발해의 영토였다.

하남성에 있는 동이인들이 모셨던 동이신도 단군으로 본다. 동이인들의 문화인 무용·음악들이 중국 고대 국가에 전해질 정도로 영향력이 강했다. 중국령인 만주와 접경지역인 내몽고 적봉산 부근에서도 단군조선의 동검이 출토됐다. 단군조선의 군사력과 문화가 널리 퍼졌던 것이다. 단군조선의 군사력, 경제력, 문화수준이 높았다고 볼 법한 유물의 발견이었다. 금·은·동·철의 합금과 주조, 금·은·옥 세공, 선박, 곡식, 옷감, 무기류, 피혁, 성곽 건축, 토기 등 생산기술도 뛰어났던 단군조선이었다. 

단군조선은 중국 고대 국가인 하·은·주와 견줘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국가였다고 보는 학자들이 있다. 단군의 묘는 평안남도 강동군에 있는 도갑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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