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이방인」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까닭으로 불행하다." 「안나 카레니나」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젊은 느티나무」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날개」

"천하 대세는 나뉜 지 오래되면 합쳐지고, 합친 지 오래되면 반드시 나뉜다." 「삼국지연의」

잊지 못할 ‘첫 문장’이다. 어느 기자는 에세이에서 안나 카레니나 같은 첫 문장을 쓰지 못해 기자가 됐다고 고백했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지만 기자 역시 한 번쯤 저런 힘 있는 문장을 쓰고 싶다. 아니면 여러 명장면을 짜깁기해 영화 한 편 만들었다는 어느 할리우드 키드 생애처럼, 유명한 구절을 모아 책으로 내도 좋겠다.

이런 양심에 털 난 생각을 하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유명한 ‘마지막 문장’은 왜 드물까.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모두가 아는 마지막 문장이자 영화 마지막 대사이기도 하다. 영화는 첫 장면보다 끝에 갈수록 힘을 준다.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이 속옷 바람으로 맘보춤을 추는 정도가 아닌 이상 관객은 대부분 엔딩을 기억하기 마련이다.

영화를 공부하던 시절 시나리오를 쓸 때마다 그렇게 마지막 장면에 집착했다. 폼 나는 엔딩을 상상하고, 오로지 그 컷을 위해 역순으로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잘 됐을 리가 있겠나. 도서관에서 허우적거리다 캠퍼스 걷는 교수를 발견하면 쫓아가 소리 질렀다. "끝이 없어요!"

톰 디칠로 감독 작품 ‘망각의 삶’은 영화 촬영할 때 생기는 온갖 괴로움을 다룬 코미디다. 그래선지 끝이 생생하다. 보통 영화를 만들다 보면 대사나 효과음 말고 촬영장의 온전한 공기 소리도 필요한데, 이를 ‘룸톤’이라고 한다. 대부분 각 신 촬영이 끝나자마자 바로 그 자리서 짧게 녹음해 둔다. "쉿! 이제 룸톤 녹음한다." 허공에 대고 마이크를 켜면 방금 열연한 배우든 지나가는 개미든 몇 분간 꼼짝 말아야 한다.

‘망각의 삶’ 엔딩은 이 짧은 시간 동안 숨죽이며 촬영장 사람들이 펼치는 상상의 나래다. 누구는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누구는 짝사랑 상대와 데이트를 즐기다가…. 컷! 소리와 함께 엔딩크레딧이 흐른다.

글은 첫 문장으로, 영화는 엔딩으로 인상을 남긴다. 이 차이가 어디서 비롯할까. 유명한 작가처럼 서두를 열어 봤으니 무명 영화감독으로 글을 마친다. 자, 카메라는 꺼졌다. 하지만 마이크는 켜 놨으니 쉿! 이제 꿈꿀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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