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화엄사/ 은은한 풍경소리/ 점점 돋아나는 홍매/ 시나브로/ 마음이 붉어진다."(첫사랑)

올해로 등단한 지 35년 된 이태희 시인 디카시집 「꽃 트럭」이 애지출판사에서 나왔다. <사진>
‘애지 디카 시선’ 여섯 번째로 출간한 시집에는 시인이 수년간 휴대전화와 디지털카메라로 직접 촬영한 사진 수만 장 가운데서 엄선한 사진 55편과 함께 정제한 시를 실었다.

시집은 1부 봄 편지, 2부 동행, 3부 명상, 4부 여백으로 구성했다.

1부에는 ‘첫사랑’, ‘존재의 이유’, ‘숨구멍’ 들 14편을, 2부에는 ‘어쩌다 물 한번’, ‘맨발 결의’, ‘세멜레’ 들 14편을, 3부에는 ‘풍경’, ‘분꽃’, ‘갯골’ 들 13편을, 4부에는 ‘호모 데우스’, ‘무죄’, ‘도장꽃’ 들 14편을 각각 수록했다.

시는 마치 일본 고유의 단시 ‘하이쿠’를 연상하게 한다. 짧게는 1행부터 길어야 6행이 전부다. 4부에 실은 ‘여백’은 7음절(비어서 아름답다)이 전부다. 3부에 수록한 ‘이순’은 2행 8음절(늙어간다/ 익어간다)이다. 하이쿠보다 더 하이쿠답다.

‘첫사랑’은 지리산이라는 넓은 공간에서 시작해 화엄사로, 풍경으로, 홍매로 점점 좁혀지듯 사랑이란 무수한 사람에게서 차츰 좁혀져 바로 ‘그 사람’에게 꽂힌다는 사실을 그린 작품이다.

‘길은 나무다1’과 ‘길은 나무다2’는 의도치 않는 순간에 포착한 장면이지만 ‘길’이 ‘나무’를 닮았다는 연상을 하게 됐고, 그 길이 자연과 자연,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잇는 생명과 같아 나무라고 제목을 붙였단다.

‘난쟁이붓꽃’은 겉으로 드러난 줄기와 꽃보다 훨씬 깊이 내려간 뿌리를 확인하게 된 장면으로, 사람들도 평소 밝고 환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 내면 깊숙한 곳에 남모르는 슬픔이 자리잡는다는 생각에서 쓴 작품이다.

‘해후’는 달과 나뭇잎과 하늘빛을 선명하게 담으려면 때를 기다려야 하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 만남도 그렇다고 생각하며 쓴 시다.

‘풍경’은 철어(鐵魚)의 눈으로 사람들이 두고 온 세계 혹은 가지 못하는 세계, 혹은 존재의 본디 그리움을 노래하고 싶었던 시라고 한다.

이 시인은 1988년 월간 「동서문학」으로 등단했고, 2001년 첫 시집 「오래 익은 사랑」을 펴냈다.

그는 "디카시집을 내게 된 까닭은 회갑을 맞아 스스로 기념품을 만들고 싶은 마음에서"라고 했다.

고봉준 평론가는 "이태희 디카시는 만물을 연결한다"며 "강렬한 생명력을 지닌 생명이 이어지고, 연결하고, 다가가고, 모이는 장면을 포착하는 일, 바로 이태희 디카시가 세계를 읽는 방법이다. 어딘가에 도달할 때까지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 일이 이태희 디카시가 지닌 마법의 비밀"이라고 평가했다.

손민영 기자 smy@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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