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 KG에듀원 교수
김준기 KG에듀원 교수

다양성은 여러 유형 간 차이가 구체적으로 실제하고 그 특성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경향이다. 이 다양성의 작용은 구성 요소 간 수준과 서로 간 견제 수단과 균형 유지 방식에 따라 그 효용성과 결과를 달리한다. 

복잡한 생물이 단세포 생물보다 더 향상되고 발전된 생물이라는 생각은 인간 중심으로 세상을 생각하고 인간 위주로 생명을 판단하는 우리의 선입견이다. 복잡성이 생명이 지향하는 목표라면 예컨대 혐오의 대상인 세균 또한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그러면 많은 질병도 없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로 산소를 만드는 시아노박테라아도 사라지고,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 대부분 동물도 자취를 감추고 말았을 테다.

세균보다 더 혐오 대상인 기생충도 인간의 건강에 필요하긴 마찬가지다. 청결한 환경이 면역력을 약화시켜 기생충과 함께 살았던 지난 시절에는 별반 없었던 아토피나 치매를 유발시키는 요인이라는 혐의도 있다.

소장과 대장을 공격해서 하루 수십 차례 설사를 일으키는 크론병에는 현재 적절한 치료제가 마땅치 않다. 면역계 교란으로 발생하는 이 병에 면역 억제제를 쓰기도 하지만 효과는 일시적이다. 그런데 여기에 기생충을 넣어 주면 치료 효과가 매우 높아진다는 의학적 소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편, 외부 환경에 면역계가 과잉 반응해서 발생하는 아토피나 면역계 공격으로 일어나는 뇌신경막을 손상시키는 다발경화증에도 기생충 치료 요법이 효과가 있음이 실험으로 입증됐다고 한다.

적절하게 유지해야 하는 양기와 음기의 밸런스가 깨져 양기가 너무 강해지면 면역력이 너무 높아지고, 그 결과 신체 교란과 함께 몸의 이상 증세를 초래하기 쉽다. 너무 사납거나 거칠어도 좋지 않은 면역계를 다스리는 데 세균뿐만 아니라 기생충도 유용한 생명체인 셈이다.

세상에 백해무익한 무용지물은 없는 법이다. 유전자가 동일하거나 한 방향을 지향하는 동물은 바이러스 공격에 매우 취약한 존재로 전락하기 십상이며 인간도 마찬가지다. 같아지면 결국 멸종할 수밖에 없다.

강한 국가도 사상이나 표현, 정치 체제 같은 문화적 다양성을 기반으로 성립되고 유지된다. 아베 프레보의 소설 「마농 레스코」에서처럼 유럽은 깡패, 죄수 등을 모두 배에 태워 미국으로 추방한다. 하지만 이들을 버린 구대륙은 결국 건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실패한 반면 사회적 낙오자들을 수용한 신대륙은 이들을 통해 종교·정치·문화적으로 성장과 발전 토대를 마련하고 갱스터 알 카포네도 등장시켰다. 

지금도 대낮 총격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며,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마약이 성행하고, 선거 때마다 엉뚱한 짓을 일삼는 나라가 미국이다. 하지만 이 무질서 가운데에서도 엄격한 질서가 작동하고, 이 혼란 속에서도 견고한 통제가 가동하는 나라 또한 미국이다. 그것이 다양성의 힘이고, 미국의 희망이다. 

유럽 도시들은 같은 기독교 문명에 기반한 동일한 유럽 문명권에 속했으면서도 건축부터 음악에 이르기까지 그 모습이나 특성이 모두 판이하다. 이에 비해 한국 도시는 곳곳이 괴상한 이름의 아파트로 무장한 채 국적 불명 일색인 거창한 건물들로 위세를 떨친다.

이 획일성은 우리 교육에서도 드러난다. 너도 나도 아이들을 전문직이나 의대 진학을 목표로 대학에 일렬로 줄 세우는 현상이 여전히 만연하다. 시골 학교에서도 대학에 가겠다고 학생이 서너 명인 반에서 교육은 입시 위주로 진행한다. 

다양성은 법치와 공정을 두 축으로 작동하고 그 힘을 발휘한다. 형벌은 희망 없는 무균 사회를 만들고, 불공정은 개성 없는 통제 사회를 조성하기 때문이다. 악을 추종하고 퇴폐나 향락을 종용하는 행태와 무관하게 이 병폐들을 포용해야 건강한 사회가 유지되며, 소수자를 끌어안고 실패자의 상처와 약자의 아픔을 보듬어야 따뜻한 사회가 실현된다. 

한탕주의가 횡행하고 투기로 일확천금을 꿈꾸는 세태가 빈번한 현상은 신뢰의 훼손과 희망의 거세로 다양성이 상실된 사회가 보이는 불안한 징후들이다. 잘못하면 반드시 벌 받고 실력과 노력만큼 대우받는 세상이 다양성을 살리고 개인과 국가도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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