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오래전 기업 간부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기회가 있었는데, 강의 중간에 ‘여러분이 지금 이 자리에 있기까지 가장 영향을 준 존재는 누구(무엇)입니까?’라는 설문지를 돌렸습니다. 큰 기업의 간부라면 대체로 성공한 사람들일 겁니다. 대부분이 스승이나 좌우명과도 같은 경전 구절을 쓸 거라고 예상했는데, 놀랍게도 빗나갔습니다. 대부분이 ‘어머니’라고 썼거든요.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잭 캔필드)에 나오는 M. 아담스의 글이 기억납니다.

아내가 저녁을 준비하는데, 어린 아들이 오더니 엄마에게 자기가 쓴 글을 내밀었습니다. 

‘잔디 깎은 값, 5달러. 이번 주 내 방 청소한 값, 1달러. 가게에 엄마 심부름 다녀온 값, 50센트. 엄마가 시장 간 사이 동생을 봐준 값, 25센트. 쓰레기 내다 버린 값, 1달러. 숙제 잘한 값, 5달러. 마당 청소한 값, 2달러. 전부 합쳐 14달러 75센트.’

엄마는 기가 차서 연필을 가져와 아들이 쓴 종이 뒤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너를 내 배 속에 열 달 동안 데리고 다닌 값, 무료. 네가 아플 때 밤새워 가며 간호하고 널 위해 기도한 값, 무료. 너 때문에 지금까지 여러 해 동안 힘들어하고 눈물 흘린 값도 전부 무료. 이 모든 것 말고도 너에 대한 내 사랑도 무료. 너 때문에 불안으로 지새운 수많은 밤과 너에 대해 끝없이 염려해야 했던 시간들도 모두 무료. 장난감, 음식, 옷, 심지어 네 코를 풀어준 것까지도 전부 무료. 이 모든 것 말고도 너에 대한 내 진정한 사랑도 무료.’

이것을 읽은 아들은 눈물을 흘리며 "엄마, 사랑해요"라고 말하더니 연필을 들어 큰 글씨로 자신의 청구서에 이렇게 썼습니다. ‘전부 다 지불되었음!’

소년의 글이 무척 귀엽죠? 아직 어린 나이인데도 어머니의 글을 읽고 감동해 울음을 터뜨릴 만큼 순수한 마음이 느껴져 더욱 사랑스럽기까지 합니다. 어쩌면 우리도 저런 어머니들의 사랑과 보호 속에서 곱고 곧게 자라지 않았을까요.

인터넷에서 어머니 사랑에 관한 사연을 검색하다가 20여 년 전 한탄강에서 낚시하던 사람이 물에 빠져 숨진 어느 할머니를 발견했고, 할머니의 손가방에서 유서 한 장이 나왔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편지지 뒷면에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 유서에는 멀리 외국으로 돈 벌러 떠난 아들을 8년 동안이나 그리워하며 살아온 할머니의 외로움이 절절히 묻어나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 보고 싶은 내 아들, 언제나 만나 볼까? 1987년도에 외국으로 떠나고 8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소식 한 장 없소. 전화 한 통이라도 해 줄까 하여 기다리다 보니 어미는 칠십 고개를 넘었구나. 살기도 많이 살았다. 어찌하여 생이별을 하게 되었는지…. 모든 게 어미 탓이다. 어디에 가서 살든지 몸 건강하여라.’

아들은 8년 전 리비아 건설현장에 갔다가 2개월 만에 사망했습니다. 친지들은 그 사실을 차마 어머니에게 알리지 못하고 아들이 미국에서 결혼해 잘 살고 있다고 전했다고 합니다. 사실 아들은 홀로 남은 노모를 잘 모시려고 리비아에 갔다가 두 달 만에 풍토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온갖 병을 앓고 계시던 할머니는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자식에게 혹시 피해라도 갈까 봐 자신의 주민등록증, 경로우대증까지 모두 없앤 뒤 유서 한 장만을 남기고 강에 몸을 던졌습니다.

자신이 아픈 건 참을 수 있었지만 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만큼은 참을 수 없었던 어머니, 아들과의 생이별조차 ‘자기 탓’으로 돌리는 어머니, 자신의 극단적 선택이 혹시라도 아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자신의 신분을 모두 감추고 유서만 달랑 남기고 떠나신 어머니! 이런 속 깊은 사랑을 먹고 이만큼 자라 이곳에서 풍요롭게 사는 지금의 우리가 아닐까요. 머리 숙여 감사함을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이 땅의 어머니들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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