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상 인천환경운동연합
박병상 인천환경운동연합

핑크뮬리 시즌이 지나 노란 은행 낙엽의 계절이 지나간다. 핑크뮬리가 왜 우리 가을의 정취를 차지했는지 모르는데, 파란 가을하늘 아래 핑크 물결은 아름답긴 하다. 하지만 사진 찍기에 여념 없는 시민 중 핑크뮬리가 우리 생태계의 위해 식물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 몇이나 될까? 우체국 옆에 무수히 떨어진 은행잎들이 노랗지 않고 대부분 우중충한 녹색이라는 사실에 걱정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2019년 환경부는 핑크뮬리를 생태계 위해 2등급으로 지정했다. 자리 잡으면 여간해서 다른 식물에 자리를 내주지 않기에 공원에 심지 말 것을 권고했지만 올 가을 전국은 핑크뮬리에 취했다. 우리 식물은 한동안 공원을 떠날 것이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을 버티지 못한 은행은 푸르죽죽한 낙엽을 떨어뜨렸는데, 내년엔 괜찮을까? 기후변화에 이은 생태계 변화를 살펴보면 긍정적으로 짐작하기 어렵다.

이맘때 우리 갯벌은 독특한 풍광을 아낌없이 연출한다. 붉은 염생식물의 드넓은 군락이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인천은 드나드는 바닷물 높이가 일정치 않은데, 해발고가 높을수록 밀물이 자주 닿지 못한다. 바닷물이 드물게 적시는 갯벌에 자생하는 염생식물은 붉게 물든다. 고유 식물을 몰아내고 공원을 차지한 핑크뮬리와 다른 차원의 경관을 연출하는데, 정작 그 사실을 모르는 시민이 많다. 갯벌의 가치를 모르는 탓일까? 인천의 소래포구가 그렇고 영종도 갯벌이 그렇다. 섬 지역 갯벌이 특히 그렇다.

2021년 서울대학교 연구팀은 1천300만t의 탄소를 저장하고 자동차 20만 대에 해당하는 49만t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국내 갯벌의 가치를 강조했다. 육지의 어떤 숲보다 탄소 흡수력이 높으므로 세계의 여느 생태계보다 뛰어난 ‘블루카본’이라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보전할 가치가 훌륭하지만, 우리는 최근까지 매립 대상으로 여겨왔다. 사실 갯벌은 ‘블루카본’ 다시 말해 탄소 흡수력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기후위기로 강력해질 해난사고를 완충할 뿐 아니라 해양생태계의 원형을 보여준다.

2021년 7월, 유네스코는 전남 신안과 보성, 순천, 그리고 전북 고창, 충남 서천, 전국 5개 지자체의 4개 권역 갯벌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했다. 4년에 한 차례, 보존 가치가 큰 세계자연유산을 등재하는데 2021년 인천 갯벌을 포함하지 않았다. 4개 권역보다 보전 가치가 낮다고 평가한건 아니었다. 탄소흡수와 경관에서 절대 뒤지지 않지만, 인천에서 충실한 자료를 제시하지 않은 탓이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유네스코는 4년 뒤 다시 신청해달라고 제안했지만 무슨 영문인지 인천시는 등재 신청이 임박한 현재까지 미적거린다.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위해 생태적 자료뿐 아니라 지역의 보전 의지와 보전과 이용 계획을 합리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세계자연유산이므로 개발이 전면 금지되는 건 아니다. 보전을 뒷받침할 개발은 허용되므로 그 과정에 지역과 주민이 소외되지 않는다. 등재되면 독특하면서 수려한 생태계와 경관이 관광객을 끌어들이면서 그 지역의 생태계, 문화, 역사가 유지된다. 가치를 훼손하는 대규모 개발행위는 제한되지만 지역 주민의 활동까지 위축시키는 게 아니므로 지역의 가치가 오히려 상승한다. 요즘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위한 경쟁이 치열한 이유가 그렇지만, 인천은 조용하다. 외지 자본의 분별 없는 개발을 원하는 걸까?

이맘때 염생식물이 눈부실 뿐 아니라 수많은 동식물이 어우러지는 인천 갯벌은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풀등을 간직한다. 썰물로 해수면이 낮아질 때 바다 한가운데에 느닷없이 모래 점이 생기더니 이윽고 모래 선에 이어 모래벌판이 순식간에 펼쳐지는 풍등의 경관은 보는 이에게 경탄을 자아낸다. 풀등에 올라 자연을 만끽하는 사람은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기억에 담을 것이다. 그럼에도 갯벌의 가치를 증명하기 여전히 꺼리는 인천시의 이유는 무엇일까? 인천 갯벌의 생태적이고 문화적인 가치를 후손 눈높이에서 보전하려는 시민 처지에서 안쓰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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