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사기」에 나오는 이야기로, 한 고조 유방의 신하 ‘주발’은 충직과 성실의 대명사로 불린 장군이었다. 학식은 많이 부족했지만 용맹하고 상황에 따른 성실한 ‘처세’와 ‘판단’으로 전국시대에 지속가능한 삶의 향유(享有)가 가능했던 인물이다. 

유방이 세상을 떠나며 그의 적장자 혜제(惠帝)를 보좌해 나라를 이끌 때 유방의 부인 고황후 여씨(高皇后 呂氏)가 일족으로 왕을 대체시키려는 음모를 꾸미며 도움을 요청하자 마음속으로는 격렬하게 반대하면서도 대세가 기운 상황에서 지속가능한 왕조를 위해 잠시 고개를 숙이게 된다. 많은 반대자들이 처형되고 새로운 기회가 오자 그는 전광석화의 준비된 전략으로 ‘여씨’ 세력을 물리치고 다시 한나라 천하로 되돌렸다. 길게 보고 단기간 실행해 왕조 복원을 마무리한 것이다.

얼마 전 국내 1호 벤처기업 ‘바이오니아’의 자료를 보고 이야기를 들었다. 30여 전 국내 유전자 연구장비와 시약을 판매하는 회사로 출발해 단단한 반석 위에 올라섰다고 한다. 그야말로 지속가능한 생존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그러면서도 리스크 관리와 사업 다각화를 통해 본업에서 이탈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수요 발굴과 수익 창출 단기 실행으로 업계 장수기업으로 우뚝 섰다고 한다. 흔들림 없는 ‘장기 비전’과 ‘임기응변적 단기 실효성’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본다. 

미국 투자전문 자산운영회사 ‘블랙록’ 회장 래리 핑크의 서신 한 통으로 전 세계가 투자 기준으로 흔히 보이지 않는 재무제표 ESG를 천명함으로써 제조업에까지 영향을 끼치며 세계적 투자 기준이라는 명분을 제시했다. 마치 ESG를 등한시하면 기업의 존재가치나 기업 활동 목적에 맞지 않는다는 선제적·종합적인 투자와 수익에 대한 투자자 일방 표준을 던져 준 셈인데 지구, 기후환경에 대한 실천 경영과 사회적 가치 구현에 따른 지속가능한 경영 그리고 주주 이익 극대화에 대한 초법적 가이드라인이 탄생한 것이다. 환경과 가치, 정도를 내세우며 투자와 수익률의 왕도(로열로드)를 만들어 그 길을 따르라고 한 것이다. 

그에 동반해 글로벌 기관들의 평가지표, 보고서가 제시되는 현실이다. 내가 투자해서 수익을 거둬야 하니 내가 제시한 기준에 맞춰 재무적 요건 충족은 물론 국가별·산업별·문화별 차별까지 보이지 않는 비재무적 요건들로 충족시켜 ‘수익률’ 달성 리스크를 최소화시켜 달라는 주문인 셈이다. 이는 투자자 보호를 위한 자본주의 강자 논리의 선행적 리스크 관리 기법일 뿐이다. 필자만의 생각이지만 금융인으로서 이 땅에 들어온 외국계 금융기관은 재무적 손해를 보는 구조로 디자인되지 않다. 철저하게 수익 최우선이다. 이런 맥락에서 머니게임(money game)이나 카지노 논리를 이야기하면 상당히 자극적인 워딩으로 치부하고 조금은 과장되고 경직된 자세를 보인다. 

탄소배출을 줄여(넷제로) 지구환경을 살리고, 가치경영과 정도경영으로 우발적·미필적 리스크를 최소화시켜 달라는, 그래야 지속가능한 기업 경영이 보장된다는 투자자로서 당연한 주문을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다.

세계대전을 계기로 지정학적 ‘힘의 논리’가 생성될 무렵부터 지구환경은 보호 받아야 할 명제였고, 사회적 가치 역시 국가·사회적 이슈로 주목받아 관리되고 발전하는 토대로 만들어 가야 했다. 정치·경제 주도권이 완연하게 구분된 지금에 와서 아직도 돈과 정보로 더 많은 돈과 정보를 얻어 자본을 축적시키겠다는 ESG와 그에 따르는 화려한 경영컨설팅 워딩은 이제 조금 템포를 조절하며 선의의 영향력 그리고 진정성과 본질적 문제로 ESG를 바라봐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 

우리나라 CEO들의 기업 경영 관점에서 환경문제 이해, 선한 영향력, 정도경영 마인드는 이제 더 이상 학습 대상이나 컨설팅 제안 대상이 아니다. 에너지 절약, 가치 실현, 정도경영은 이제 누구나 공감하는 경영과제다. 따라서 ESG 경영은 인류와 지구, 사회가 내준 숙제를 충실하게 풀어가면 된다. 미국 금융업계 소식에 따르면 2023년 ESG 관련 펀드에서 140억 달러(약 18조 원)가 인출됐다고 한다. ESG 관련 펀드 잔액 역시 급속하게 줄어들었단다.

월스트리트저널과 투자리서치 모닝스타 분석을 보면 ESG 영향력을 평가하는 지속가능 펀드 32개 상품 역시 올해 소멸되리라 점치며 5개 이상 펀드가 ESG 관련 의무를 파기하겠다고 했다. 낮은 수익률 때문이다. 결국 ESG에서 ‘지속가능성’은 배제하겠다는 계산인 셈이다. 중소기업 CEO의 ESG에 대한 장기 비전과 단기 실행력이 최고의 전략자산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