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나라의 일꾼을 뽑는 선거가 다가온 탓인지 곳곳에서 거친 막말을 쉽게 듣곤 합니다. 좋지 않은 일이라도 뉴스에 자신의 얼굴이 나오는 게 도움이 된다는 헛된 믿음이 있기 때문일까요? 그러나 그들이 꼭 알아야 할 점은 리더의 말 한마디가 국민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게 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들의 저주에 가까운 말은 국민의 정치에 대한 혐오와 무관심으로 이어지게 해 결국에는 ‘상처뿐인 영광’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상처’는 국민의 것이 되고, ‘영광’은 그의 당선으로 끝나 버릴 테니까요. 그러니 리더의 언어는 감동을 주는 언어여야 합니다.

훌륭한 리더들은 과연 어떤 말을 하는지를 아는 사례가 있습니다.

미국 제16대 대통령인 링컨은 ‘모든 영광은 부하에게, 책임은 나에게’란 좌우명을 가졌습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인성 이야기 111가지」(박민호)에는 남북전쟁 당시 그의 일화가 나옵니다.

전쟁이 한창일 때 북부군 총사령관인 링컨에게 참모들이 진언했습니다. "각하, 미드 장군이 게티즈버그전투에서 꾸물대다가 남부군의 로버트 리 장군을 생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임무를 소홀히 한 그를 문책하셔야 합니다." "맞습니다. 우리 북부군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서라도 미드 장군에게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이때 링컨이 "북부군 총사령관은 바로 대통령인 나요. 그러니 그 일은 미드 장군이 책임질 게 아니라 내가 책임져야 합니다"라고 말하자 모두가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빅스버그전투에서 자신의 계획과는 다른 주장을 했던 그랜트 장군이 의외로 대승을 거두자 링컨은 그랜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랜트 장군, 승리를 축하하오. 이번 승리는 장군의 판단이 전적으로 옳았기 때문이오. 또한 북부군 총사령관이며 대통령인 내 판단이 틀렸음을 확실하게 증명했소. 장군, 승리를 다시 한번 축하하오."

임무 수행을 소홀히 한 부하를 감싸는 동시에 그 책임을 자신에게 두고, 전투 계획에서 자신과는 다른 생각을 가졌던 부하가 대승을 거두자 자신의 실수를 선뜻 인정하고 그를 칭찬하는 링컨의 모습에서 위대한 리더의 자질을 엿봅니다. 바로 희망의 언어가 그를 더더욱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혐오의 언어는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가장 고귀한 복수는 용서’라고까지 말합니다.

「지혜의 보석상자」(심창희)에 소크라테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가 길을 가는데 낯선 사람이 나타나 그에게 몽둥이를 휘둘렀습니다. 그의 친구가 상처를 입고 쓰러진 그를 일으켜 세운 뒤 "폭력을 행사한 저 놈을 잡아 보복하자!"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만두게나. 당나귀에게 차였다고 당나귀에게 복수할 수는 없지 않겠나."

서양철학의 거목다운 품격이 느껴지는 언어입니다. 살다 보면 때로는 남에게서 좋지 않은 대우를 받기도 하고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그럴 때 상대방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거칠게 반응하면 그 순간만큼은 통쾌할 겁니다. 그러나 이런 적대적인 반응은 적만 늘리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그런 면에서 관용의 미덕을 보인 소크라테스가 더욱 위대해 보입니다.

선거 때마다 후보자들의 이야기만 듣고 있으면 4년 후 나라의 미래가 무척 희망적이라고 믿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임기 내내 서로 으르렁거리며 격렬하게 싸우고 정제되지 않은 험하고 거친 말들을 쏟아내는 모습들을 수십 년 동안이나 봤습니다. 이젠 지칩니다.

링컨이나 소크라테스처럼 리더의 언어는 희망의 언어여야 합니다. 리더의 거친 언행은 정치 위기를 부르고, 그 위기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사람들은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나라의 밝은 미래와 국민의 행복한 삶을 위해 이제부터라도 리더들은 화해와 관용과 격려의 언어로 희망을 전해 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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