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협회의 세계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3분기 기준으로 세계 주요 34개국의 GDP 대비 기업(비금융)부채 비율은 한국(126.1%)이 세 번째로 높았다. 우리보다 높은 곳은 홍콩과 중국뿐이었다. 일정 규모를 갖춘 자유시장 경제국으로 보면 실질적으로 우리나라가 1위다. 같은 기간 GDP 대비 가계부채도 100.2%로 가장 높다. 코로나 사태가 시작된 2020년 이래 4년째 부동의 1위를 기록 중이다. 기이한 일이다. 왜 우리만 세계적인 통화 긴축·고금리 기조와 반대 방향으로 가는 걸까.

출발점은 재정건전성 훼손이다. 2017년 660조 원이던 나라 빚이 5년 새 1천조 원을 돌파했다. 이 시기에 민간채무도 악화됐다. 단적인 예가 국제결제은행의 신용갭(GDP 대비 민간채무 비율과 장기 추세선 간 격차)이다. 2017년 이전만 해도 마이너스 수준으로 양호했으나 2022년에는 18.2%까지 벌어졌다. ‘2%p 미만이 보통, 2∼10%p가 주의, 10%p 이상이 경고’인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악화됐는지 짐작이 간다. 한마디로 정부발 흥청망청 빚잔치와 감독 부실이 민간부채로 전이된 셈이다.

문제는 대출 부실이 몰고 올 경제적 타격이다. 기업의 연체 대출 잔액은 2019년 3분기 이후 가장 많고, 연체율도 2021년 1분기 이후 최고 수준이다. 자영업자의 연체액과 연체율, 카드 돌려 막기는 매분기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가계 주택담보대출 증가세도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식이면 앞날은 불 보듯 뻔하다. 고금리 부담 가중으로 연체율과 부도율이 증가하고, 그 여파로 소비와 투자가 축소되면서 일자리와 세수, 성장률이 쪼그라든다. 모두가 부채 관리 실패에 따른 대가다.

이제라도 부(負)의 경영에 집중해야 한다. 경기 부양에 너무 집중하면 필연적으로 부채 증가를 유발한다. 정부와 민간 부채 규모를 동시에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가시적 성장률에만 집착하면 두 마리 토끼를 잃는 악수가 된다. 내실을 기하면서 기반을 다지는 게 더 중요하다. 

방법은 구조 개혁이다. 영세 자영업과 좀비기업 등 과잉 상태를 해소하고, 연금·노동·교육·복지·세제를 개혁하며,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가로막는 규제를 철폐하는 게 그것이다. 구조 개혁 없이는 성장도 미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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