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한국법치진흥원 이사장
이선신 한국법치진흥원 이사장

최근 국회는 윤 대통령의 노란봉투법·방송3법 거부권 행사와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을 둘러싼 여야 간 대치 정국 확산으로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다. 그 뿐만 아니라 여야가 ‘쌍특검’(대장동 50억 클럽, 김건희 여사 주가 조작 의혹)과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국정조사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 국회 운영이 정상화될지 불투명하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도 이미 법정기한(2일)을 넘겼다. 여야의 ‘네 탓 공방’ 속에 법사위(법제사법위원회)도 개점휴업 상태다. 법사위에 계류된 상임위 법안은 400여 건이나 된다. 대부분 민생과 관련한 법안들이다. 수백만, 수천만 명 국민의 이해가 달린 중요 법안들이다. 농협법, 농지법 개정안 등 농업 부문 주요 법안들도 모두 법사위에 묶였다. 김진표 국회의장과 한덕수 국무총리가 민생법안 통과를 촉구했지만 여야의 극한 대치 상황 속에서 법안 통과는 전혀 진척되지 않는다.

이처럼 국회 운영이 파행을 빚은 중요 원인 중 하나로 ‘법사위 횡포’가 지목된다. 국회법 제86조 제1항은 다른 상임위에서 심사를 마친 법률안은 법사위에 넘겨 체계·자구 심사를 거치도록 규정한다. 그런데 법사위는 법안의 체계·자구 심사를 구실로 사실상 다른 상임위를 통제하는 상위 기관처럼 행세한다. 법사위가 국민 편익 증진보다는 법조인의 직역 보호나 정치적 이유로 권한을 남용하는 ‘법안의 무덤’이 됐다는 비판이 팽배하다. 국회도 이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16대 국회부터 법사위 법 체계·자구 심사권을 폐지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당리당략에 치우쳐 논의가 진척되지 못했다. 

2021년에는 국회법 제86조 제5항을 신설해 타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에 대해 법사위가 "체계와 자구의 심사 범위를 벗어나 심사해서는 아니 된다"라는 규정까지 도입했지만, 법사위는 이 규정마저 무시하고 위반하기 일쑤다. 법사위가 법안의 ‘체계·자구’가 아닌 ‘내용’을 트집 잡아 통과를 반복 보류시키고, 의도적으로 심사를 늦춰 법안이 폐기되는 일이 빈발한다. 수많은 공무원과 민간전문가가 법안 마련을 위해 쏟아부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과 비용이 수포로 돌아갈 위험에 처한다.

지난달 22일 법사위 개최를 놓고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도읍 법사위원장이 거칠게 충돌한 일마저 있었다. 법사위 개최를 합의한 상황에서 김도읍 위원장이 여야 원내대표 합의 이후로 법사위 일정을 미루려 하자 민주당이 항의한 데서 비롯됐다. 

박용진 의원은 "제가 국회를 원활하게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을 해서 민주당 안에서 우리가 여당할 때, 욕을 그렇게 먹으면서도 법사위 위원장 합의대로 합시다 그랬다. 합의대로 하자고. 그래서 지금 (국민의힘 소속) 김도읍 위원장님 합의대로 지금 법사위원장 하고 계시는 것"이라며 "솔직히 말씀드리면 후회할 때가 많다. 국회가 합의했으면 지키자고 그 말 한마디로 (당 안팎의 비난을 받아)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아세요?"라고 반문하고 "박용진 잘난 척하더라고 비판받아 가면서 했는데, 오늘 이렇게 (법사위 개최가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모습을 보면 제가 민주당 당원들에게 욕먹어도 싼 일을 했다 보다 이런 생각까지 든다"고 좌절감과 분노감을 표했다.

법사위 위원장을 맡은 정당이 국회 운영 전반을 좌지우지하는 권한 남용과 폐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법사위 권한 중에서 ‘법 체계·자구 심사권’을 아예 폐지해야 한다. ‘법 체계·자구 심사’는 각 상임위에 전문인력(국회공무원)을 두거나 국회 안에 전담 기구를 둬 담당하게 해야 한다. 20명에 가까운 법사위 의원들이 ‘법 체계·자구 심사’를 하는 것보다 전문성·효율성이 더 강화될 수 있다. 법사위가 발의한 법안에 대한 체계·자구 심사도 법사위가 아닌 제3의 전문인력 또는 기구가 담당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법사위에서 ‘법 체계·자구 심사권’을 폐지하지 않는 한 국회 운영 선진화를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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