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이 가까워졌다. 집 안팎에서 가드닝을 하며 나만의 정원을 꾸려 가는 사람들을 찾는 게 어렵지 않을 정도다. 특별한 꽃과 나무, 연못과 기암괴석으로 꾸며야만 할 듯했던 정원이 생활 속에서 쉽고 가깝게 식물을 가꾸며 누리는 공간으로 변화하는 정원문화가 확산한다. 

올해 수원에서는 더 특별한 정원들이 곳곳에 생겼다. 이웃들이 함께 만들고 가꾸며 공동체가 공유하는 ‘손바닥정원’이다. 시민 손으로 만들고 시민 곁으로 다가간 손바닥정원이 수원 전역에서 힐링과 휴식 거점이 된다.

지난 4월 제1회 가드닝의 날 행사에 참석한 이재준 시장과 관계자들이 꽃을 심었다.
지난 4월 제1회 가드닝의 날 행사에 참석한 이재준 시장과 관계자들이 꽃을 심었다.

# 이웃 화합을 되살린 행궁언덕마을 작은 정원

팔달산 아래에는 오래된 주택단지가 있다. 산자락과 이어지는 언덕 아래 골목마다 기와집과 양옥집들이 제각각 색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원도심 정취를 바탕으로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들어서 행궁동의 또 다른 매력이 펼쳐지는 마을이다.

더욱이 행궁로26번길 커다란 불상 아래 첫 번째 집은 넓은 마당이 눈길을 끄는 집이다. 언제나 열린 ‘행궁언덕마을 누구나 정원’이다. 지난해 원래 있던 넓은 마당을 보수하면서 담장 대신 펜스를 치고 절반가량 공간을 과감하게 이웃과 공유한 손바닥정원이다.

집주인 김명란(55)씨는 외곽 40㎡ 남짓 공간을 정원으로 꾸몄다. 봄에는 봉숭아, 과꽃, 수국, 작약을 심고 여름에는 마당 입구에 나팔꽃과 연꽃을 가꿨다. 가을에는 코스모스와 백일홍, 국화를 식재해 골목에서 계절을 느끼도록 했다. 담벼락과 돌 틈 하나하나 작은 공간까지 놓치지 않고 정원을 만들었다.

손바닥 크기 작은 정원은 주민들의 화합을 이끄는 촉매제가 된다. 마당 정원을 가꿔 개방하면서 손바닥정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교육받는 공간으로 활용했다. 지난 5월 한가로운 어느 봄날에는 작은 정원에서 도시락 음악회도 열렸다.

수원 도심 곳곳에 조성된 손바닥정원.
수원 도심 곳곳에 조성된 손바닥정원.

마을에도 변화를 불러왔다. 마당 공간을 공유하는 계획을 설명하기 위해 꽃 화분을 나눠 주며 인사를 나눴던 인근 주민들이 서서히 집 대문을 열기 시작했다. 돈독해진 행궁로26번길 이웃들은 집 마당과 정원, 주차장, 대문 앞 공간을 활용한 야드세일도 진행했다. 10~11월 주말에 많게는 10가구가 참여할 정도로 활발하게 소통했다. 주민들은 행사를 마친 후 자발적으로 골목을 청소하며 공동체 중요성과 애향심을 확인했다고 전한다.

행궁언덕마을 누구나 정원을 만들고 관리하는 김 씨는 "손바닥정원 조성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공간을 만들어 내는 좋은 기회였다"며 "정원을 만들고 공간을 공유하면서 마을 장터가 열리고 동네가 활발해졌다고 자부한다"고 했다.

# 쓸모없어 보이던 빈 공간, 정원으로 재탄생

장안구 율천동에도 주민들 발길이 잦은 손바닥정원이 있다. 성균관대역 환승주차장 통행로와 맞닿은 20㎡ 규모 공간이다. 이곳은 역을 중심으로 동쪽에 사는 주민들이 오가며 마을과 세상을 연결하는 관문 구실을 했다. 하지만 원래 나무 몇 그루가 전부여서 빈 공간에서 일부 주민들이 흡연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율천동지킴이봉사단은 이곳을 손바닥정원으로 조성하기로 뜻을 모으고 7월부터 아기자기한 정원을 꾸몄다. 다른 용도로 활용하기 어려운 자투리 공간에 사람들이 꽃과 나무를 즐기도록 비비추, 송엽국, 가우라, 부용, 맥문동, 튤립을 심고 가꿨다. 누구나 잠시 쉬어 가도록 벤치를 설치하고, 따뜻한 응원 문구도 적어 뒀다. 지금은 겨울을 맞아 손뜨개로 만든 눈사람과 펭귄, 트리, 사슴뿔, 양말 같은 소품을 비치해 계절감을 더했다. 

수원 도심 곳곳에 조성된 손바닥정원.
수원 도심 곳곳에 조성된 손바닥정원.

성대역 환승주차장 응원 쉼표 정원은 사거리에 먼저 자리잡던 마을정원, 밤나무동산과 어우러져 율천동 마을을 더욱 따뜻하게 만드는 손바닥정원이다.

건너편 율전초등학교에도 손바닥정원이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지원으로 학교 건물 전면 화단 231㎡ 공간에 조성한 율전초 텃밭정원이다. 일부는 한국 고유 식물인 진달래, 히어리, 노루오줌, 부처꽃, 구절초를 심어 우리 식물의 가치를 배우도록 하고, 일부는 텃밭상자를 설치해 방과 후 교육과 체험활동을 하게끔 운영했다. 더욱이 정원에 높낮이가 있는 화단과 디딤돌을 둬 학생들이 쉽게 이용하도록 배려해 공유 정원의 가치를 알렸다.

영통3동 주민들은 동 경계 외곽 도로변에 희망동산을 만들었다. 매탄3동과 맞닿은 경계지역 건물 사이에 버려졌던 황무지였다. 영통3동 주민자치회 마을만들기 분과위원회는 1980년대 개나리마을이라고 불렸던 역사를 기억하려고 개나리의 꽃말 ‘희망’이 중심이 되는 희망동산을 만들었다. 72㎡ 규모 공간에 개나리와 미니 배롱나무, 목련, 황금측백, 미스킴라일락, 남천나무를 아기자기하게 심었다. 영통지구 외곽에 위치해 단절된 느낌이던 삭막한 공간에 꽃동산을 조성한 셈이다. 폐자원을 활용해 만든 바람개비가 쉼 없이 돌아가는 희망동산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작은 여유를 선물하는 공간이 됐다.

수원 도심 곳곳에 조성된 손바닥정원.
수원 도심 곳곳에 조성된 손바닥정원.

# 5분마다 만나는 녹색 공간 ‘손바닥정원’

행궁동과 율천동 등 앞서 소개한 정원들은 모두 손바닥정원 우수 사례다. 말 그대로 손바닥만 한 작은 공간을 정원으로 꾸며 도심 속 유휴 공간을 활용하고자 이재준 수원시장이 취임 초기부터 역점을 두고 추진한 수원시만의 독자적 사업이다.

도시의 빈 공간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마을 공터, 자투리 땅, 공동주택 단지 사이 관리가 모호한 공간처럼 도심 곳곳에 작은 공간이 숨어 있다. 이런 공간을 능동적으로 찾아내고 시민들이 직접 꽃과 나무를 심고 가꾸며 5분마다 작은 정원을 만나도록 지원하는 게 손바닥정원의 핵심이다. 수원시는 2026년까지 손바닥정원 1천 개를 만든다는 목표다.

시는 지난해 말부터 손바닥정원 추진을 위한 밑그림을 그렸다. 손바닥정원 개념을 정립하고 추진하는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손바닥정원 안내 매뉴얼을 만들어 다양한 손바닥정원이 가능하도록 제시했다. 손바닥정원은 점형이나 선형을 포함해 공중과 그릇 같이 형태에 구애받지 않고, 옥상과 실내는 물론 보행 공간과 상가 자원을 모두 포함하며, 치유와 쉼부터 놀이와 배움까지 다양한 기능을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손바닥정원을 추진하는 세부 전략도 수립했다. 집집마다 꽃과 나무를 가꾸고, 5분마다 만나는 1천 개 정원을 만들고자 3개 전략 12대 과제를 구체화했다.

영통3동 주민들이 동 경계에 버려진 황무지를 손바닥정원으로 조성했다.
영통3동 주민들이 동 경계에 버려진 황무지를 손바닥정원으로 조성했다.

첫 번째는 자발적인 정원문화 지원이다. 지난해 12월 27일 손바닥정원 토크콘서트를 개최해 손바닥정원 사업을 알린 후 가드닝의 날, 정원 특강을 열어 시민들이 정원 만들기에 동참하도록 했다. 또 공원녹지사업소 안에 ‘도구지원센터’를 만들어 호미와 전지가위 따위 220개 도구를 비치하고 누구나 빌려 사용하게 했다.

두 번째 목표인 일상 속 정원 더하기에는 시민 참여가 두드러졌다. 1년 동안 300개 손바닥정원을 조성했고, 시민들이 만든 정원을 대상으로 공모와 경연을 진행해 우수 사례를 뽑았다. 손바닥정원 사업 첫해인 올해 12개 정원이 우수작으로 선정돼 5일 시상식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세 번째 추진 전략인 지속적인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는 ‘새빛수원 손바닥정원단’이 힘을 보탰다. 발족 이후 850명에 달하는 단원을 모집해 정원 계획부터 조성과 관리 활동은 물론 의견 개진까지 손바닥정원 확대의 중요한 축을 담당한다. 다양한 기관과 기업, 단체들의 협력도 잇따라 참여 폭을 넓힌다.

이재준 시장은 "손바닥정원은 단순히 작은 정원이 아닌 나와 이웃이 함께 가꾸는 정원"이라며 "손바닥정원이 탄소중립으로 나아가는 공동체의 대표 모범 사례가 되도록 시민께서 동참해 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안경환 기자 jing@kihoilbo.co.kr

사진= <수원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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