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림 칼럼니스트
김호림 칼럼니스트

요르단 서안(西岸)과 동지중해 사이를 팔레스타인 지역이라고 부른다. 이 명칭은 기원전 12세기 지중해 동부 연안을 침입해 그곳에 정주했던 해양민족 블레셋을 가리키는 히브리어에서 유래했다. 여기에 히브리인들이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조상의 땅인 가나안으로 돌아와 블레셋을 포함한 그 지역 정착민과 땅 전쟁을 일으키면서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했다. 따라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생존을 위한 분쟁과 갈등 관계는 수천 년을 이어온 역사에서 점철된 땅과 종교전쟁의 산물이어서 쉽사리 해결 가능한 문제가 아니다. 

2020년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간 체결한 ‘아브라함 협정’으로 중동은 잠시 평화체제로 전환되는 느낌이었으나, 10월 7일 하마스가 자행한 이스라엘 민간인 학살과 인질 나포 사태로 이 지역은 다시 세계 화약고가 됐다. 왜 하마스는 이런 기습 공격을 감행했고, 철통 방벽(防壁)의 아이언돔을 가진 이스라엘은 어찌하여 속수무책이었을까? 

이런 전쟁의 양태를 전문가들은 하마스의 비대칭 우위 전략에 의한 침략이라고 한다. 즉, 이스라엘의 막강한 군사력과 대칭되는 방법으로는 승산이 없으므로 수천 대 미사일과 로켓으로 아이언돔을 피할 수 있으며, 드론으로 국경의 첨단경보시스템을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마스가 1천200여 명에 달하는 이스라엘 민간인을 잔학하게 살해하고 240여 명의 인질을 끌고 간 것은 이스라엘을 분노의 도가니에 몰아넣어 이스라엘 군대로 하여금 과도한 진압 작전을 유도하려는 목적이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상자 속출과 민간건물 파괴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지게 해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적 동정을 와해시킴은 물론, 서방에서 반이스라엘 운동을 전개한다. 동시에 팔레스타인 문제를 국제 의제에 다시 등장시키며 서안지구와 예루살렘 봉기를 촉발시킬 뿐 아니라, 이란의 영향력에 있는 레바논의 호전적인 헤즈볼라그룹에게서 무력 지원을 얻기 위함이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한편, 전통적인 이스라엘의 안보 원칙은 건국 초부터 설정한 ‘전쟁억지력’, ‘조기 경보’, ‘방어능력 구축’, ‘확고한 승리’ 네 기둥에 의해 유지됐음에도 왜 이번 사태에서는 무방비 상태였을까? 전문가들은 앞의 두 가지 기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첫 번째 전쟁억지력 유지는 내란으로까지 치달을 뻔했던 행정부의 대법원 권한 무력화를 위한 입법화 갈등으로 초래된 국내 정치 문제로 와해됐고, 두 번째 조기 경보 시스템 구축은 원격 조정을 위한 첨단기기 사용으로 국경수비대를 축소한 것이 결국 느슨해진 국경 수비 한계를 초래했으며, 정보당국의 정보체계인 휴민트 부재 상황으로 적기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마스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약점을 놓칠 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대응은 기민하고 단호했으며, 하마스는 당황했다. 단, 48시간에 36만 명의 예비군 지원자가 몰려들었고 그 중 6만 명은 해외 지원자였다. 주변 아랍제국이 바로 개입해 지원할 것으로 여겼던 확전이 예상과 달리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하마스가 쉽게 진압되지 않고 어느 정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면, 이는 온건파 수니 아랍국가들에게는 국내 불온 세력을 준동시키는 불안요소가 될 뿐 아니라, 이란이 지원하는 강경 시아파 국가인 이라크, 레바논과 예멘에도 불안 요인이 된다. 

이제 한시적으로 시작된 휴전과 인질·포로 교환이 지속성을 가질지는 아직 말하기 이르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에 의해 평정될 것이다. 그 이후 문제 역시 평탄치 않다. 어느 국가가 한시적으로 가자지구를 통치할지, 가자지구의 복구사업은 어떻게 진행될지 등 산적한 과제가 남아 있어서다. 

여기에서 이 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역사는 실패한 평화 노력으로 얼룩졌고, 파기된 외교회담과 환멸을 느끼게 하는 중재 노력으로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는 실효성이 없는 평화협정을 구걸할 필요가 없다. 9·19 남북군사협의 파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협정이나 약속이 평화를 유지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역사가 증명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소모적인 국내 정치 투쟁을 지양(止揚)해야 한다. 국정원의 대공 정보 능력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나라를 지킬 자는 우리 자신밖에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 타이완 여론조사에서 54%가 싸우는 것을 꺼리고, 20대 중 69%가 총을 드는 데 거부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수천 년간 국가를 처절하게 지켜 왔는지 그 결의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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