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현린 주필
원현린 주필

해마다 연말이면 전국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발표한다. 교수들은 올 한 해를 대표하는 사자성어로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는다’라는 뜻의 ‘견리망의(見利忘義)’를 꼽았다. 

교수신문은 전국 대학교수 1천31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30.1%를 얻은 견리망의를 1위로 선정했다. 이어 잘못한 사람이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을 도리어 나무람을 뜻하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이 2위, 실력이 없는 자가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비유하는 ‘남우충수(濫우充數)’가 3위, 진구렁에 빠지고 숯불에 타는 듯한 극심한 고생이 말이 아니다라는 뜻을 지닌 ‘도탄지고(塗炭之苦)’가 4위, 여러 의견이 뒤섞여 혼란스럽다는 의미의 ‘제설분분(諸說紛紛)’이 5위를 차지했다. 하나같이 모두가 올해 우리 사회를 대변하기에 남음이 있는 성어들이라 사료된다. 

교수들도 지적했듯이 나라가 온통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만을 좇는 아수라장이 돼 버린 해였다. 아마도 이를 부인할 이는 없을 테다. 

이(利) 앞에서는 인(仁)도 의(義)도 없는 것인가. 정의의 가치를 지닌 모든 것이 초개처럼 버려진다. 교수들이 내놓은 ‘견리망의’야말로 목전의 소리(小利)에 집착하는 정치권 인사들의 욕망을 비롯해 혼탁한 우리 사회 현주소를 잘 나타낸 촌철살인(寸鐵殺人), 외마디 경구(警句)라 하겠다. 

자로(子路)가 완성된 사람(成人)에 대해 묻자 공자(孔子)는 "이(利)를 보고 의(義)를 생각하며, 위태로움을 보고 목숨을 바치며, 오랜 약속에 평소의 말을 잊지 않는다면 또한 완성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 不忘平生之言 亦可以爲成人矣)"라고 말했다. 눈앞의 이익을 보면 먼저 의를 생각하라는 ‘견리사의(見利思義)’의 출전(出典), 「논어(論語)」에 나오는 말이다.

맹자(孟子)가 양혜왕(梁惠王)을 찾아 가니 왕이 말했다. "선생께서 천 리를 멀다 하지 않고 오셨으니 장차 내 나라를 이롭게 함이 있겠습니까?" 맹자는 "왕께서는 하필 이(利)만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仁)과 의(義)가 있을 따름입니다(王 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라고 말했다. 

매사 이익만을 목적으로 추구하는 일은 해가 될 수도 있으나 인의에 입각해서 하는 일에는 이익이 저절로 따른다는 의미가 된다. 

예나 이제나 이익을 탐하는 세태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군자와 소인을 빗대 의를 중시한 경구는 많다. 논어에 나오는 몇 구절을 인용해 본다. "군자는 덕을 생각하고 소인은 처하는 곳을 생각하며 군자는 법을 두려워하고 소인은 이익을 탐한다.", "자신에게 이(利)롭고자 하면 반드시 남에게 해(害)를 끼친다.", "군자는 의(義)에 깨닫고, 소인은 이익에 깨닫는다." 등등이 그것이다. 

선현들이 인과 의를 어느 가치보다 중요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겠다. 하지만 각박한 사회에서 물질적 이익을 목전에 두고 인의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고 여겨진다. 상기에서 언급한 ‘견리사의’ 사회가 아니라 ‘견리망의’가 만연하다고 봄이 옳은지도 모른다. 

지금 인의를 내세우다 보니 어쩌면 이득을 탐내어 친척도 잊고, 부모형제를 돌보지 않으며 도적 생활을 했다는 「장자(莊子)」에 나오는 그 옛날 도척에게 인의(仁義)를 가르치려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든다.

이 땅에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넘치는 사회는 기대난인가. 눈앞에 보이는 당장의 이익은 긴 호흡으로 보면 결코 전체에 이로운 것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경험했다. 이익만을 추구하는 의식이야말로 건전한 사회로 향하는 우리 앞날을 어둡게 하는 불건전한 사고들이다. 

어쩌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지 모른다.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먹을 것(民以食爲天)이라는 말도 있다. 기업인이나 상인들은 이익을 좇아 상행위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겠다.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공무원(헌법 제7조)과 청렴 의무가 있고 국가 이익을 우선해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는 국회의원(동법 제46조)이다. 이들마저 이(利) 앞에 의(義)를 생각지 않고 저버린다면 우리 앞날에 희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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