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14번’은 ‘월광곡’ 또는 ‘월광 소나타’라고 불리는 유명한 곡입니다. 당시 그의 제자이자 연인이던 부유한 귀족 출신 줄리엣 귀차르디에게 헌정한 곡이라고 알려졌습니다.

물론 두 사람은 나이 차이도 컸고 신분 차이도 있어 짧은 인연으로 막을 내렸지만, 그 아픈 이별은 위대한 곡이 돼 오늘날까지 전해집니다.

그런데 이 곡이 만들어진 배경에 또 다른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뒤주 속의 성자들」(김윤덕)에 나오는 이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다고 해도 한 번쯤 음미해 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베토벤이 밤길을 산책하던 중 작은 오두막의 창문 커튼이 열려 있어 슬쩍 들여다봤습니다. 안에는 구두를 꿰매는 오빠와 금발의 한 소녀가 있었는데, 마침 소녀는 악보도 없이 자신의 ‘F장조의 소나타’를 치는 중이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소녀였던 겁니다.

그는 집에 들어가길 청한 후 방으로 가서 소녀에게 "앞이 보이질 않는데 어떻게 그 곡을 배웠니?"라고 물었습니다.

소녀는 자신이 전에 살던 집 옆에 백작 부인이 살았는데, 그 부인이 치던 이 곡을 들으며 혼자 익혔다고 했습니다. 부모도 없이 오빠와 낡은 피아노가 전부인 그녀의 유일한 소원은 베토벤 연주를 직접 듣는 거라고도 했습니다.

그가 아무 말 없이 피아노 연주를 하자 소녀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선생님이 바로 베토벤이시죠?"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더니 꿇어앉아 한 곡만 더 들려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던 그에게 호롱불이 창가 바람에 흔들리고 환한 달빛은 교교했고, 밤하늘의 초롱초롱한 별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푸른 달빛은 나뭇가지 사이로 창 안으로 스며들어 소녀의 금발 머리에도 내려앉았습니다. 소녀의 눈물이 달빛을 받아 진주처럼 영롱하게 빛났습니다.

그가 그때 느낀 감동을 떠올리며 즉흥적으로 곡을 만들었습니다. 소녀의 영혼과 베토벤의 영혼 그리고 푸른 달빛이 어우러져 그의 손가락은 자유자재로 건반 위에서 춤을 춥니다.

점점 귀도 들리지 않게 된 그가 만년에 만든 이 곡이 바로 ‘월광 소나타’입니다.

저는 이 글에서 소녀가 꿈에 그리던 베토벤을 직접 만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 봤습니다.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원망하며 살기보다는 옆집 부인의 연주를 교재 삼아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하루하루를 버텨냈습니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름다운 연주를 할 만큼 실력이 쌓인 어느 날, 베토벤이 우연히 그곳을 지나쳤을 겁니다.

소녀의 이런 태도에서 저는 ‘행운은 우연히 찾아오는 게 아니라 준비된 사람에게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것’이라는 지혜를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귀도 잘 들리지 않던 베토벤이 만년에 이렇게 아름다운 곡을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내가 죽기 전에 반드시 불후의 명곡을 하나 더 만들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곡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앞 못 보는 소녀만을 위해 건반을 두드렸고 그때 소녀의 청순함과 그 소녀를 비추는 달빛의 사랑에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감동을 고스란히 오선지에 담았고, 그것이 불후의 명곡이 됐습니다.

만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던 베토벤이 지극히 평범한 소녀를 그토록 소중히 여겨 그녀가 간절히 원하던 곡을 직접 연주하는 모습은 마치 위대한 성자와도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는 그녀를 ‘동정’하는 차원을 넘어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동정심이 안타까워하는 마음이라고 한다면, 공감은 안타까운 상황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일을 찾아 행하는 것입니다.

그는 공감했고, 그래서 연주를 통해 그녀의 영혼에 감동과 희망을 전했습니다. 이 공감은 그녀에게는 희망을, 베토벤 자신에게는 불후의 명곡을 선사했습니다.

이렇듯 동정심은 고통에 처한 사람을 구하진 못하지만, 공감은 쓰러진 사람을 일으키는 힘이 되고 공감하는 사람에게 행복감을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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