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한 학기가 마감될 무렵이면 학생들에게 꼭 ‘협상’에 관한 실무적 이해와 스킬을 강의한다. 이때 20분짜리 수잔 케인의 TED 유튜브 영상을 보여 주며 수년간 연구와 수많은 사람과의 인터뷰 끝에 그녀가 터득한 내향적 협상(설득)이 얼마나 위대한 기질인지 확인시켜 준다.

그녀는 프린스턴과 하버드 법대를 우등생으로 졸업한 후 기업과 대학에서 협상 기법을 가르치는 변호사가 됐지만, 내성적인 자신의 성격이 직업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성공이 보장되는 월스트리트 변호사 세계를 떠나 작가와 강연자 길로 들어선다.

산업사회의 과다 경쟁이 낳은 ‘외향성 이상주의’ 부작용과 그 해법을 「콰이어트」라는 책으로 출간했고, 이어 ‘타임’ 커버스토리에 오르며 전 세계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이 책은 루즈벨트(영부인), 앨 고어, 워런 버핏, 간디 같은 내향적인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내향성이 사회와 만날 때 어떤 중대한 효과와 성과를 내는지 보여 준다. 저자는 인류학, 심리학, 뇌과학, 유전학에서 내향성에 관련된 모든 연구와 실험들, 그리고 실제로 자신을 비롯한 현대를 살아가는 내향적인 사람들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작용들이 과연 무엇인지, 이들의 심리적 사고와 행동 패턴이 가진 긍정 가치들을 조직이나 사회에서 어떻게 계발시키고 이끌어 낼지에 관해 심도 있게 다뤘다.

‘조용하다(calm)’와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인 ‘캄 테크’는 미국 정보기술연구원들이 기술한 논문에서 최초 언급한 개념이다. 일상에서 센서와 컴퓨터, 네트워크 장비를 보이지 않게 탑재해 존재를 드러내지 않다가 필요할 때 사용자에게 각종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술을 말한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4차 산업 시대, 특히 일상에서 평소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다가 필요할 때 조용하고 침착하게 몰두해 사용하는 기술이다.

사람의 위치와 온도를 감지해 바람을 자동 조절하는 스마트 에어컨이나 보관 중인 음식물 상태를 파악해 식재료를 자동 주문하는 스마트 냉장고, 사용자 심박수와 운동량을 체크해 건강을 지켜 주는 웨어러블 기기, 전·후방 차량을 감지해 자동으로 사고를 막는 기술이 탑재된 자동차 등 다양한 상품군에서 캄 테크가 적용된다.

전문가들은 캄 테크가 지향해야 하는 요건으로 ▶무자각성 ▶확장성 ▶융합서비스 3가지를 제시한다. 무자각성은 사용자가 존재를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고 편리해야 함을 뜻한다. 확장성은 현실과 가상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확산되는 것을 의미하며, 융합서비스는 제3의 다른 기술과 융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의미다.

‘브뤼셀 효과’라는 용어가 있다. EU가 소비자 보호, 제품 안전, 환경보호 등 보편적 가치를 바탕으로 규범으로 만들면 다른 국가와 기업은 자발적으로 이를 따르는 현상을 말한다. 이렇게 EU가 먼저 규범으로 만들어 전 세계로 확산시키면 규제에 대한 적응력도 선제적·종합적으로 갖춰 세계화로 이어 간다고 보는 것이다. 

ESG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야 한다. 지구환경과 사회적 가치, 정도경영을 보편적 시각에서 주제로 삼았다고 하지만 서구적 투자자본의 문법이고, 다듬어지지 않은 이해관계 조율로 통상의 장벽과 규제, 보호막을 에둘러 씌운다. ESG는 보편적 가치에 기초한 자발적 수용으로 가닥을 잡아가야 한다. 지속가능성이란 어휘가 주는 담보성은 CEO들의 세심한 대응과 주의를 요구한다.

이런 방향성을 컨설팅이나 세무, 회계, 법리를 앞세워 ‘또 다른 수익 원천’으로 보는 순간, 기업을 경영하는 CEO에게는 비용지출에 관한 부담으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 ESG 그 자체만 독립적으로 평가하려 접근하면 연계와 상호작용을 통한 기업 발전에 독이 될 수도 있다. 일단 성과를 내고 그 과정을 증명하는 노력 역시 필요하다. ESG를 내걸고 마치 융단포격하듯 요란하게 외향적 힘 자랑을 해서는 안 된다. CEO의 조용한 내면적 의지의 캄 테크 경영 역량이 그래서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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