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식 편집부국장
한동식 편집부국장

어느 날 갑자기 시장(市場)이 사라졌다. 고대 때부터 사람들이 모여 왁자하게 물건을 사고팔거나 교환했던,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전통시장 이야기가 아니다. 인터넷 시대 강자로 부상한 거대 플랫폼의 횡포 때문이다.

정보통신기술이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시장은 직접 대면을 통한 물물교환이라는 과거 방식만이 아니라 ‘다음’이나 ‘네이버’ 같은 인터넷 환경의 강점을 가진 거대 플랫폼이 생겨났다. 이곳에서는 상품 거래뿐 아니라 다양한 정보를 내놓고 습득하는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나 공간 구애 없이 공급자 또는 수요자로 참여해 자신들이 얻으려는 가치를 실현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수익을 창출하기도 하고 정보를 얻는 거대 시장이 생긴 셈이다.

애써 집이나 사무실 컴퓨터를 켜지 않아도 된다. 주머니에 쏙 들어가 언제나 꺼내들 수 있는 휴대전화 하나면 만사 오케이다. 세계 어느 골목길 좌판에 깔린 물건이라도 손가락 하나면 사고팔 수 있고, 우크라이나의 처절한 전투 상황도 지하철이나 버스에 앉아 실시간으로 꿸 정도다.

이렇게 인터넷 플랫폼은 공급자 시각만이 아니라 수요자 요구가 상호작용하면서 새로운 가치와 수요를 만들어 내는 상생의 생태계를 형성했다. 그래서 현대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사회 인프라가 됐다. 많은 이들이 간편하게 정보를 접하고 얻는다는 장점 때문에 플랫폼은 단순히 기능적 인프라로서만이 아니라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플랫폼은 서비스 기반 경제의 핵심 동력으로 우뚝 섰지만 강력해진 위상만큼 위력과 의존성이 커지며 여러 부작용이 나타난다. 정보의 종속이 만들어 낸 강자의 횡포다. 당장 뉴스 정보를 제공하는 군소 언론사의 기사 노출을 제약한 거대 플랫폼인 카카오 ‘다음’이 도마에 올랐다. 카카오는 지난달 포털 다음 뉴스 검색에 뉴스 제휴 146개 언론사(CP) 기사만 노출하는 기본값을 변경했다.

말이 기본값 변경이지, 다음과 뉴스 검색 제휴를 맺은 나머지 1천여 개 언론사 기사는 차단했다. 뉴스 제휴 언론사 기사가 전체 언론사 기사보다 많은 검색 소비량을 보였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댔다. 6개월간의 실험을 바탕으로 한 결정이라고도 덧붙였다. 다음에 종속됐던 많은 언론사들이 하루아침에 생존 위협을 느끼는 현실에서 내놓은 변명치고는 궁색하다.

국내 대표 플랫폼인 다음은 그동안 뉴스 제휴사 기사를 포함한 1천200개의 검색 제휴 언론사 전체 기사를 한꺼번에 노출했다. 하지만 검색 제휴 언론사 누구와도 사전 상의를 거치지 않았고, 국민에게도 충분한 안내 없이 1천여 개에 달하는 언론사를 일방으로 뉴스 검색에서 제외했다.

인천과 경기지역 100여 개 언론사 가운데 단 한 곳만이 노출될 뿐이다. 인천에 본사를 둔 기호일보를 비롯한 대표 언론사 두 곳 역시 별도의 조건값을 변경하지 않으면 다음에서 뉴스를 볼 수 없다. 왁자하게 정보를 주고받았던 마켓인 시장이 그렇게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디지털시대에 접어들면서 각 언론사들은 거대 플랫폼 노출에 사활을 걸었다. 검색과 노출량에 따라 몸값이 매겨지기 때문이다. 정성을 다해 취재하고 새로운 취재원 발굴을 위해 어려운 환경임에도 기자들을 독려했다. 그러나 뉴스를 생산해도 이제는 효과적으로 제공하고 평가받을 시장이 사라졌으니 언론사로서는 입에 풀칠할 일이 걱정이다. 각 사는 홈페이지 등 별도 플랫폼을 운영하지만 방문자 수는 거대 플랫폼에서 뉴스를 간단히 검색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된다. 피해는 언론사뿐 아니라 뉴스 소비자인 국민들에게 온전히 이어진다.

입맛에 따라 보고 싶은 것만 보겠다는 다음 카카오의 뉴스 검색값 축소는 공정한 뉴스 검색 결과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행위이자 국민이 받아야 할 보편적 뉴스 서비스를 차단하는 행위다.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질적 불쾌함을 나타내는 ‘언캐니(Uncanny)’ 그 자체다.

마침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1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제54회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플랫폼 거대 독과점 기업들의 문제를 지적하며 강력한 법 집행 의사를 밝혔다. 여기에 다음이 포함되는지는 살펴야겠지만, 공정한 뉴스 공론장을 폐쇄한 다음 카카오는 뉴스 검열 통제 행위인 이번 뉴스 검색 기본값을 원상 복구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정치권 역시 이번 조치가 왜 발생했는지 분명한 원인 규명에 나서야 하며, 다음에 이어 네이버 등 다른 플랫폼에서 재발하지 않도록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카카오는 다음이 그 자리를 지킨 동력이 무엇이었는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이재(理財)에 뛰어남도 있었겠지만 국민과 언론의 사랑이 컸다는 점이다. 이익이 커졌다고 자신을 있게 한 이들의 의로움을 잊어서는 결코 온전할 수 없다. 그게 세상의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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