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이타심으로 사랑을 나누며 사는 사람을 성자라고 불러도 좋을 겁니다. 그런데 ‘성자’를 떠올리면 평범한 사람은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10여 년 전 에콰도르 축구대표팀이 좋은 예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연용호)에 따르면, 2006년 월드컵 16강전에서 영국에 패한 에콰도르 선수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굶주린 주민을 돕기 위해 참가했기 때문입니다. 한 선수는 "어려서 살던 저희 마을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병원에 가려면 한 시간이나 걸려 시내로 나가야 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선수들은 월급을 모아 재단을 설립하고, 병원을 짓고, 발전기를 세웠으며 초등학교까지 건립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예는 1939년 스페인 내전 중 어느 사형장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반란군을 은닉한 죄로 총살형을 앞둔 성직자가 사형 집행 직전 자신의 금시계를 풀어주며 "이게 나의 전 재산이니, 이걸 팔아 전쟁으로 부모를 잃어 갈 곳 없는 고아들을 돌보는 데 써 달라"고 했답니다. (「이따금 이야기 한 잔」, 배명식)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굶주린 국민을 위해 축구를 하고, 전쟁고아들을 위해 전 재산인 금시계까지 내어놓는 성직자의 이타심이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평소에는 평범한 축구선수들이고 성직자였는데 말입니다.

이 예화를 접하면서 나다니엘 호손의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미국 어느 작은 마을에 거대한 얼굴 모양의 바위산이 있었는데, 그곳에 살던 어니스트는 언젠가 저 바위산과 닮은 얼굴의 훌륭한 인물이 등장할 거라는 어머니 말씀을 굳게 믿었고, 이 믿음을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았습니다.

그가 어렸을 때 만난 어느 부자를 큰 바위 얼굴이라고 여겼지만 탐욕스럽고 거지에게 동전을 던지는 행동을 보고는 실망했고, 목수로 일하던 청년 시절 강한 의지를 가진 유명한 장군을 큰 바위 얼굴로 믿었지만 자애로움이나 지혜가 없어 그저 싸움꾼과도 같아 또 실망했습니다. 결혼해 가족을 꾸리고 살 때 만난 정치가는 당당한 외모를 갖춰 큰 바위 얼굴로 알았지만, 권력과 명예욕에 찌들어 사는 모습을 보고는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어느덧 노인이 된 어니스트가 만난 네 번째 사람은 시인이었습니다. 목수 일을 은퇴하고 설교를 하던 어니스트가 어느 날 시를 읽고 감동해 그를 큰 바위 얼굴이라고 믿고 대화를 나눴지만 이내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시인이 신념을 지키지 못하고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왔음을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어니스트의 설교를 듣던 시인이 어니스트가 큰 바위 얼굴과 닮았다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어니스트는 큰 바위 얼굴은 분명 자신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언젠가는 반드시 나타날 거라고 대답합니다.

저는 어니스트가 어릴 때 가진 믿음을 평생 간직해 온 점이 놀라웠습니다. 그 간절한 믿음이 어니스트를 큰 바위 얼굴로 만들어 줬습니다. 더 놀라운 점은 큰 바위 얼굴과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조차도 자신은 아니라며 보인 겸손한 모습입니다.

‘내가 간절히 염원하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누군가를 간절히 염원하면 그런 사람이 될 테니까요. 산타를 염원하던 사람이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산타가 돼 있음을 알게 되듯이 말입니다.

링컨 대통령은 "나는 내가 죽고 난 뒤에 꽃이 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엉겅퀴를 뽑아내고 꽃을 심었던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꽃을 심는 사람이 곧 에콰도르 선수들이고, 전쟁고아에게 쓰라며 금시계를 내놓은 성직자일 겁니다. 곧 성탄절입니다. 혹한의 추위에 힘겹게 사는 분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이 독자 여러분이고 저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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