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선택하는 게 정답이야." 

크리스마스에 열어 본 친구의 편지에서 가장 오래 시선이 머문 문장이다.

‘정답’ 따위 단어를 썩 좋아하지 않는데도 기자를 응원하는 친구의 따스한 마음이 큰 감동을 일으켰다. 그 작은 다정은 ‘내가 틀리지 않다’는 믿음에도 기운을 실어줬다.

기자는 오른팔 안쪽에 고라니를 타투로 새겼다.

고라니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멸종위기동물로 규정한 보호종이다. 그러나 개체 수 대부분이 한국에 몰려 국내에선 오히려 유해 조수로 분류한다.

귀한 대접을 받는 고라니와 찬밥 신세가 되는 고라니는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 무얼 잘하거나 잘못해서도 아니다. 빼어난 백조가 오리들 무리서 ‘미운’ 존재로 배척당했듯 그저 선 환경에 따라 운명이 극단으로 갈릴 뿐이다. 애초에 농작물을 파먹으니 유해하다는 규정 자체도 지극히 인간 중심 사고다.

인간이 고라니에게 끼치는 해악을 헤아려 보자면 우린 과연 얼마나 떳떳할까.

중요한 건 한 존재가 다른 다수 존재들에게 멸시당할 때 느끼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감각이다. 그 감각은 유동적이고 그다지 합리적이지도 않지만 실존을 위협할 정도로 강력하다. 존재해야 할 이유를 의심하게 만들고, 끝내는 오답 같은 스스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만든다.

기자에겐 산다는 일이 그 감각과 싸우는 나날의 연속인 듯싶다. 너무 많은 멸시와 너무 많은 무시, 너무 과도한 침해가 수시로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러나 백조답지 않게 오리를 흉내 내려 애쓴다면 얼마나 우습고 애잔할까.

너울에 휩쓸리지 않도록 자주 오른팔을 본다. 지금 내가 선 곳이 나를 전부 규정할 순 없다는 진실을 떠올린다.

뮤지컬 레드북의 넘버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노랫말 중 일부를 빌려 글을 맺고 싶다.

"(나는) 문제투성이 세상에 하나의 오답으로 남아 나를 지키는 사람." 

<윤소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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