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괜찮아. 좋은 사람이야."

누군가를 소개할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소개하는 사람이 자신이 있기에 ‘좋은’이라는 형용사까지 붙여 가며 이야기했을 것이다.

얼마 전 친구가 ‘좋은 사람’ 한 명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본인이 본 사람 중 가장 친화력이 좋고 사람을 편하게 해 주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사람들은 알고 지내면 좋다는 이유에서 적극적으로 날을 잡자고 나섰다. 친화력이 좋고 사람을 편하게 하면 좋은 사람이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들떠보이는 얼굴에 질문은 하지 못했다.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일까. ‘좋은’이라는 단어는 다분히 주관적이다. 어학사전에서는 ‘좋다’를 ‘성품이나 인격 따위가 원만하게나 선하다, 말씨나 태도 따위가 상대의 기분을 언짢게 하지 아니할 만큼 부드럽다’고 표현한다.

혹자에게는 예의가 바른 사람이고, 또 다른 혹자에게는 원만하고 잘 웃는 사람일 테다. 기자도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배려할 줄 알고, 타인을 이해하는 폭이 넓고, 혼자보다는 함께 살 줄 아는 사람. 조건이야 나열하라면 끝도 없겠지만, 세 가지 정도로 추렸을 때는 이정도인 듯하다.

정의가 있지만, ‘좋은 사람’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 담긴 단어이기 때문에 서로 의미가 통하지 않을 때도 많다.

기자 특성상 적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만날 때마다 자주 느끼는 부분이기도 하다. A라는 사람을 두고 누군가는 ‘시원시원하고, 호탕하고 의리 있다’고 말하지만, 누군가는 ‘무례하기도 하고, 독단적이다’라고도 말한다. 상반된 평이지만, 둘 중 하나가 맞고 하나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편견과 과장이 섞인 평이라고 해도 그들이 겪은 A의 모습 중 하나일 테니.

기자가 좋아하지 않는, 기자뿐 아니라 대부분이 부정적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두고도 누군가는 칭찬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또 다시 ‘좋은 사람’의 정의를 곱씹게 된다. 같은 모습이어도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 또 누군가에게는 별로인 사람으로 남는다면 타인의 말에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 노력해도 나쁘게 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무력하지만, 내 모습 그대로를 좋게 보는 사람도 있기에 내 모습대로 지내 보려 한다. 

<윤은혜 기자>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