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꼬박 사용한 손때 묻은 달력도 마지막 장만 남겼다.

‘시간 참 빠르다’는 생각을 하던 12월의 어느 출근길, 흥미로운 이야기가 라디오에서 흘러 나왔다.

진행자는 자신의 방송에 출연한 뇌 과학자에게 나이를 먹어 가면서 점차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고 터놨다. 또 한 해가 한 덩어리로 느껴질 정도로 기억에 남는 일이 적다고 덧붙였다.

이에 뇌 과학자는 바쁘게 살아서 시간이 빨리 흐른 게 아니라고 답했다.

뇌는 익숙한 일을 반복하길 바라며 에너지 사용을 꺼려 한다. 반복하는 일상에 적응한 뇌는 굳이 에너지를 사용하며 기억으로 저장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렇게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보낸 시간을 뇌가 댕강 잘라 빠르게 흘렀다고 여긴다.

그는 진행자와 라디오 청취자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뇌에 흔적으로 남겨 놔야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고 귀띔했다. 어린 시절 기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에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 투정을 부렸다. 이에 어른들은 시간은 나이에 비례해 흘러가기에 지금 느리게 가는 시간도 나이를 먹으면 속절없이 흐른다고 일러줬다.

어제와 오늘이 비슷하게 바쁜 하루를 보내는 지금에서야 그 말 뜻을 어렴풋이 알겠다.

모르는 사이 조금씩 생활이 단조롭고 특별한 경우가 적다. 더욱이 스스로 만족시킬 시간을 쓰기 어렵다. 빨리 지나는 시간 앞에서 숨을 고르자니 헛헛한 기분마저 든다.

그래도 어찌하겠는가. 쏜살같은 시간을 조금이라도 곁에 두려면 아쉬운 쪽이 전문가 말처럼 뇌에 흔적을 남기려고 노력하는 방법밖에 없다.

다가올 연초를 맞아 한 해 목표를 관심으로 잡았다. 주변과 나에게 관심을 쏟을 계획이다.

매일 다니는 길을 걷더라도 주변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길가에 판다가 대나무를 먹는다고 한들 알아차리지 못한다. 평범한 일상도 나를 둘러싼 주변에 관심을 두면 의미가 더해져 특별하게 여겨진다.

또 틈틈이 생각을 다이어리에 옮겨 글로 남기려고 한다.

정신없이 지난 한 해가 아쉬워 달력의 마지막 장을 물끄러미 봤다. 이내 넘겨진 올해 달력 열한 장 속에 적어 낸 일정과 메모를 살펴봤다.

뇌가 잊어버린 하루하루가 퍼즐이 제자리를 찾듯 맞춰지며 올해를 되돌아본다. 한 해의 끝자락 아쉬움은 훌훌 털어 버리고, 새로이 맞이하는 2024년을 반갑게 맞이할 채비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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