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상 인천환경운동연합·60+기후행동 공동대표
박병상 인천환경운동연합·60+기후행동 공동대표

황금시간에 유명 연기자를 내세운 아파트단지 광고가 한창이다. ‘리조트’를 생뚱맞게 앞세우는 인천 외곽의 아파트단지인데, 리조트가 필요한 지역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얼마나 분양이 저조하면 저런 광고에 치중하는 걸까? 광고 덕분에 모두 분양되면 도로는 무척 좁아질 게 틀림없다. 도로에서 시간을 빼앗기는 주민은 퇴근 후 리조트처럼 꾸민 아파트단지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을 듯하다.

주안 일대는 재개발이 한창이다. 초고층 아파트로 일관하는데, 지금도 막히는 교통 상황을 어떻게 풀어가려고 할까? 그 아파트에 입주할 주민 중 직장이 주변에 있는 시민은 드물텐데, 걱정은 출퇴근만이 아니다. 학교, 관공서, 상가로 이어지는 도로는 원활할까? 곧 대형상가가 들어서거나 택배 차량이 늘어날텐데 주민은 지역에 만족스러울까? 초고층으로 다닥다닥 붙은 아파트가 그렇듯, 하늘 좁아진 아파트의 주민은 다정한 이웃을 단지에서 만나기 어렵다. 정주의식이 들어설 공간이 아니다.

낯모르는 주민이 무표정하게 뒤섞이는 아파트에 정주의식은 깃들지 못한다. 정주의식 없는 마을은 쓸쓸하다. 편의시설이 아무리 훌륭해도 이웃과 정들지 못한다. 초고층 건물이 하늘을 가리는 아파트단지는 투자가치에 민감할 따름이다. 리조트 앞세우는 분양 광고의 의도와 무관하지 않을 텐데, 시민이 지역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도시에서 민주주의는 허약하다. 서로 드잡이하는 주민이 생기고 민원이 거세질 수 있지만 서로 의견을 나누며 배려하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시민은 줄어든다.

건설 자본의 이익을 고려하는 아파트단지는 지방자치단체에 넓은 도로를 요구할텐데, 그런 도로는 지역에 관심이 없다. 지역에 대한 애정을 느끼지 못하는 주민이 아파트를 떠나지 않도록 묶어두려면 적지 않은 예산을 동원해야 한다. 공산물을 제때 모자라지 않게 공급하는 데 그칠 수 없다. 쓰레기는 서둘러 아파트단지 밖으로 버려야 한다. 도로에 적지 않은 예산을 동원할수록 지방자치단체는 힘겨워진다.

문화재 보존 정책으로 넓은 도로를 확충하지 못하는 유럽은 15분 도시를 지향한다. 15분 이내 이동하는 거리에서 일상이 가능한 도시를 조성하는 정책이다. 프랑스 파리가 대표적으로 자동차에 빼앗긴 도로의 폭을 크게 줄여 자전거에 양보했다. 그러자 민원이 들끓었을까? 오히려 그 반대였다. 소통을 막는 자동차를 버리고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하는 시민은 공원이나 마을회관에서 지역의 문제를 논의해 스스로 해결하려 노력했고, 민주주의는 두터워졌다.

15분 도시는 넓은 도로가 만들지 않는다. 15분 거리의 공간에서 일상이 가능한 정책을 시민과 더불어 만들 때 가능하다. 시민은 지역 내에서 에너지와 농산물을 최대한 자급하며 쓰레기를 해결하려 노력한다. 그를 위해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소통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희로애락을 공유하는 이웃이 마을이 당면한 문제의 대안을 고민하면서 하나하나 실현한다면 정주의식은 저절로 뿌리내린다. 주민은 여간해서 지역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초고층으로 일관하는 인천에 부족한 도시의 면모가 아닐 수 없다.

2024년이 밝았다. 작년까지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기상이변은 끔찍했다. 화석연료의 탐욕스런 낭비 때문인데, 우리나라도 무서워진다. 해안에 초고층 빌딩을 밀집시킨 인천시는 당연히 긴장해야 한다. 해수면이 빠르게 상승하더라도 늦기 전에 15분 도시를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인천은 농산물과 해산물이 풍부한 섬을 가졌다. 소통하고 나눌 공간을 도시 곳곳 마련한다면 가능하다. 그를 위해 건설업자가 아니라 미래세대를 먼저 생각하는 정책을 세워야 한다. 갑진년(甲辰年)의 청룡은 시작을 의미한다고 하니 2024년이 그 원년이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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