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을 변호사(법무법인 이목)
한을 변호사(법무법인 이목)

얼마 전 일입니다. 수술 도중 발생한 의료사고로 소송을 준비하는 고객을 상담할 기회가 있었는데, 고객이 상담 도중 "최근 수술실 CCTV 영상 녹화가 의무화됐다고 아는데, 의료기관에서 사전에 영상 녹화를 요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CCTV 영상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수술실 CCTV 영상 녹화가 의무화된 사실은 알지만 녹화 요건 등 구체적 내용을 잘 모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본 칼럼을 통해 간략하게나마 수술실 CCTV 영상 녹화의 요건, 한계와 녹화 영상의 확보 방법에 관해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의료기관에서 수술실 CCTV 영상을 의무적으로 반드시 녹화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에 관해 먼저 설명하겠습니다. 

개정된 의료법에 따르면 전신마취 등 환자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진행하는 수술에 관해 환자 또는 환자 보호자가 ‘사전’에 녹화를 요청하는 경우 의료기관은 수술실 CCTV 영상을 의무적으로 녹화해야 합니다. ‘전신마취 등’에는 전신마취뿐 아니라 수면마취도 해당하나, 국소마취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경우에도 반드시 환자 또는 환자 보호자가 ‘사전’에 녹화를 요청해야 한다는 점을 유의하셔야 합니다.

만약 환자가 사전에 녹화를 요청하더라도 의료기관은 아래와 같은 사유를 들어 거부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응급수술을 하는 경우입니다. 둘째로 위험도가 높은 수술, 예를 들어 간 이식(일례에 불과하고, 법이 설시하는 위험도가 높은 수술의 종류는 매우 다양합니다)과 같은 수술을 하는 경우에도 거부가 가능합니다. 셋째로 전공의 수련을 위해 필요한 경우, 마지막으로 기타 천재지변 등 불가항력적 사유가 있는 경우 의료기관은 녹화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은 요건을 충족해 의료기관에서 CCTV 영상을 녹화하고, 환자가 이를 열람하는 경우에도 환자가 수술실 CCTV 영상을 통해 의료기관의 의료과실을 입증하기는 사실상 어렵습니다. 의료법과 의료법 시행규칙은 구체적 녹화 방법, 즉 수술실 CCTV가 어떠한 장면을 촬영해야 하는지에 관해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수술실 폐쇄회로 텔레비전 설치·운영 기준’은 의료기관이 CCTV 영상을 녹화할 때에는 수술받는 환자와 수술에 참여하는 사람 모두가 화면에 나타나도록 영상을 촬영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즉, 의료기관은 수술실 전체를 녹화할 의무만을 부담할 뿐 수술하는 부위를 집중해 촬영할 의무는 없으며, 따라서 이를 의료과실 증거로 사용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또 의료법과 의료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CCTV 영상 녹화 시 녹음은 원칙적으로 불가하며, 예외적으로 수술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동의를 받는 경우에만 녹음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의료진 처지에서는 녹음에 관한 동의를 해 줄 이익이 전혀 없으므로 실무상 무의미한 규정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의료진이 수술 과정에서 주고받는 대화를 수집하기 어려우며, 이 같은 점 때문에 CCTV 영상을 의료과실 증거로 사용하긴 더욱 어렵습니다.

결국 수술실 CCTV 영상을 확보한다고 하더라도 대리수술과 같은 고의적 범죄를 입증하는 경우에만 활용할 뿐, 의료과실 증거로 활용하기는 어렵습니다.

아울러 의료기관은 녹화 영상을 30일에 한해 보관할 의무가 있으므로, CCTV 영상을 활용하려면 녹화 후 30일 이내에 의료기관에 영상 열람을 요청해야 합니다. 열람의 청구는 환자와 보호자가 일방적으로 요청할 수 없고 수사기관, 법원,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통하거나 예외적으로 수술 참여자 전원 동의를 얻는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수사기관 등을 통하는 경우 내부 처리 절차에 소요되는 시간을 생각하면 30일의 기간은 매우 촉박합니다. 환자가 해당 기간을 연장하려면 환자가 ①수사기관 등을 통해 영상 열람을 요청할 예정임을 이유로 ②관련 업무 절차를 현재 진행 중이라는 증빙서류(고발장, 의료분쟁조정신청서 등)와 함께 의료기관에 영상 보관기간 연장을 요청해야 합니다. 요청일로부터 30일 이내에서만 보관기간 연장이 가능하고, 기간을 재연장하려면 다시 요청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새로운 제도 도입에는 언제나 시행착오가 있기 마련이지만, 본 수술실 CCTV 영상 녹화 제도는 실효성 측면에서 많은 의문이 드는 제도임은 분명합니다. 추후 추가적인 법 개정을 통해 본 제도가 개선돼 억울한 피해자를 구제할 효과적인 제도로 정착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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