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한국법치진흥원 이사장
이선신 한국법치진흥원 이사장

농협법 제1조는 "이 법은 농업인의 자주적인 협동조직을 바탕으로 농업인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하여 농업인의 삶의 질을 높이며,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대단히 거창하게 규정했다.

농협의 운영만 제대로 되면 농업인은 아무런 걱정거리 없이 최상의 행복을 누릴 것처럼 전제하고, 그 책무를 온전히 농협에 부담 지우는 듯하다.

협동조합의 본질론적 관점에서 보자면,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자주적·자조적·자치적 단체로서 ‘이익단체(interest group)’로 보는 편이 옳다. 협동조합을 마치 공익단체 내지 공공단체 또는 정부 정책 수행을 위한 하수기관인 듯 바라보는 것은 부당하다. 그러므로 정부·지자체 등 공공부문에서 해야 할 일과 책임을 협동조합에 부담지워서는 안 된다.

그런데 정부는 물가가 급등할 때 이를 억제한다는 이유로 오래전부터 농협에 농산물 가격 인하를 종용하는 일이 왕왕 있었는데, 이는 협동조합 본질에 어긋난다. 농협은 오히려 조합원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가급적 비싸게 팔아 줘야 할 책무를 지녔다. 무작정 비싸게 팔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수요공급에 기초한 가격원리에 의해 시장에서 허용되는 범위에서) 가급적 괜찮은 가격으로 팔리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편, 농협법 제13조는 "지역농업협동조합(이하 이 장에서 ‘지역농협’이라 한다)은 조합원의 농업생산성을 높이고 조합원이 생산한 농산물의 판로 확대 및 유통 원활화를 도모하며, 조합원이 필요로 하는 기술, 자금 및 정보 등을 제공하여 조합원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 향상을 증대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제113조는 "중앙회는 회원의 공동이익의 증진과 그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한다.

즉, ‘조합은 조합원을 위해’, ‘중앙회는 회원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부연하자면 중앙회는 회원조합의 이익 증진과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조합은 조합원의 이익 증진과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따라서 중앙회가 조합원을 위한 사업을 직접 수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중앙회는 조합이 조합원을 위해 사업을 원활하게 잘하도록 (‘조합원’이 아니라) ‘조합을’ 지원하는 일을 해야 한다. ‘조합원을’ 지원하는 일은 조합의 역할이다. 중앙회는 조합이 조합원을 지원하는 일을 더욱 잘하게끔 ‘조합을’ 지원하는 일을 담당해야 한다. 그것이 중앙회의 설립 목적이고 소명이다.

1988년 농협법 개정으로 조합장과 중앙회장 선거제가 도입된 후 조합 운영은 꽤 개선됐다는 평을 받으나(조합원의 의사 적극 반영 등), 중앙회 운영은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다. 중앙회 운영에 회원조합의 의사 반영이 미흡하고, 소통 부족과 하향식 권위주의 잔재가 상존한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중앙회가 ‘회원조합의 공동이익 증진과 건전한 발전 도모’라는 설립 목적에 과연 충실하게 운영되는지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한다. 또 농업·농촌·농협을 둘러싼 주변 여건이 날로 악화되는데, 중앙회가 이러한 문제에 체계적·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따라서 1월 25일 실시될 농협중앙회장 선거에 입후보한 8명의 후보자들은 이러한 과제들에 대해 효과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기 바란다. 

한편, 이번 선거에서도 후보자의 ‘알릴 권리’와 유권자의 ‘알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깜깜이 선거’가 될 우려가 제기된다. 

‘지역 대결 선거’, ‘돈 쓰는 선거’가 되지 않도록 후보자와 유권자들(전국 1천111개 조합의 조합장) 모두 유념해야 한다. 아울러 임직원 선거운동 개입과 후보자 간 부적절한 거래와 담합 가능성 우려도 상존한다.

아무쪼록 농협 선거를 두고 농업인 조합원과 국민들이 실망·분노하는 일이 없도록 선거는 공명하게 치러져야 한다. 농협이 제 역할을 잘 수행하고 건전하게 운영되기를 바라는 사회적 기대가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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