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욱 경기본사 정치부장
정진욱 경기본사 정치부장

선거철이면 그간 잊고 지내던 고사성어를 자주 본다. 세력과 세력의 다툼이 일어나는 혈투의 현장인 만큼 과거 있었던 일을 빗대어 작금의 상황을 표현하는 일이 상당하다.

최근 정치 구도를 보면 떠오르는 문구는 합종연횡(合縱連衡)이다. 

거대 양당의 그늘 아래 함께하지 못한 이들이 연합을 이뤄 대의를 이뤄 보겠다는 의지를 피력 중이다. 요새 말로는 빅텐트(Big Tent)로 지칭되는 열세들의 규합이 22대 총선이 채 3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재현됐다.

과거에도 총선을 앞둔 시점에 이같이 변화를 도모하는 이들의 연합전선 구축은 있었다. 제3지대 후보로 출마해 당락에 관계없이 흔히 말하는 캐스팅보트가 돼 선거판에서 존재감을 부각했다.

8년 전 20대 총선을 앞둔 시기에는 안철수 의원이 주도한 국민의당이 양강 구도 속에서 예상 밖 선전을 기록했다. 연고로 둔 호남 일부 지역에서 상당한 승전보가 나오면서 교섭단체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정당이 됐다.

가장 인구가 많은 경기도에서도 비록 지역구 당선자를 내지는 못했지만, 당시 제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을 제치고 비례대표 정당득표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랬던 국민의당도 선거 이후 채 2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바른정당과 합당한 바른미래당으로 흡수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전 소속 정당에서는 주류에 속했던 이들이 국민의당 소속으로는 양당에 치이는 비주류로서의 한계에 직면하면서 이탈 분위기가 조성됐고, 정당 정책이나 창당 당시 비전과 관계없이 정치함수에 따라 합당이 이뤄지면서 창당 초반 정치 대안 세력을 자처했던 세력들은 다시 양강 구도의 한 구성원으로서 지금껏 정계에 몸담는다.

현재 상황에서 여야 비주류들이 당을 나서게 된 데는 그들만의 합당한 이유가 있다.

여권에서는 현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실과 이준석 전 대표 간 갈등이 표면화됐고, 주축 세력에서 밀려난 이 전 대표의 탈당과 창당이 진작부터 예견됐다.

야권은 대선 패배 이후 더불어민주당이 대선 주자였던 이재명 대표 체제로 변화했고, 이후 줄곧 사법리스크와 더불어 사당화(私黨化) 비판이 제기되면서 친명 대 비명 간 다툼이 지속됐다.

당내 다툼에도 여야 공통적으로 칼자루를 쥔 주류들이 상대에 손을 내밀기보다는 외면하는 모습으로 일관했고, 이들의 결별은 예고된 수순처럼 이뤄졌다.

당내 인사들의 탈당과 신당 창당, 그로 인해 유권자들의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은 좋다. 그런데 기존 정당은 물론이고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신당들 역시 개혁을 하겠다는 의지만 내비칠 뿐 무엇을 개혁하겠다는 건지는 당최 보이질 않는다.

가칭 개혁신당은 거창하게 창당 비전을 발표했지만 갈빗집에서 했다는 기억 말고 남은 게 없고, 새로 합류하는 인사들 역시 정치 개혁을 표방하는 창당 비전과 거리가 먼 인물들 일색이다.

지역 정가에서 들리는 말로는 과거 국민의힘 소속 인사였으나 이제는 정치와 거리가 멀어진 인사들에게도 손을 내민다는 이야기가 왕왕 들려온다.

이낙연 신당인 새로운미래 역시 창당을 통해 대한민국을 변화시키겠다는 목적은 보이지 않고 이재명 대표와 악연을 가진 인물들로만 진영을 구축, 이재명 때리기에만 혈안이 된 모습이다.

그렇다고 국민의힘이나 민주당 역시 길어진 경제 침체에 따른 서민경제 위기 극복, 세계 최하위 수준의 저출생 문제 완화, 빈부격차 해소와 같은 국민 요구에는 해법을 내놓지 못한 채 당리당략에만 치중하는 꼴을 보인다.

경기도가 이번 총선의 전국 최대 승부처라는 여론 속에 여권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신년 초반부터 용인·고양·수원 같은 도내 대도시권을 잇따라 방문했음에도 별다른 시너지는 찾기 어려운 상황이고, 야권은 비명계를 노리는 친명계 인사들의 자객 출마 논란이 또 다른 당내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합종의 책략이 성공하지 못한 데는 연합을 이룬다는 공학(工學)에 치중된 결과였다. 여야는 물론 새로 출현하는 정당들이 선거를 이기고 지는 함수에만 치중한다면 우리 정치 미래도 합종을 하고자 했던 6개국처럼 쇠락의 길을 걷게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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