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활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성희활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해 8월, 큰딸 결혼식에서 나는 축사 겸 덕담을 하면서 4대 성인(공자·붓다·소크라테스·예수)을 소환했다. 결혼이 얼마나 지난한 과제인지를 언급하면서 4대 성인의 결혼생활을 유머러스하게 거론한 것이다.

공자는 70 평생 집을 떠나 온 천하를 유랑했고, 붓다는 그 좋다는 왕관도 버리고 가출 같은 출가를 했으며, 소크라테스의 행복하지 못한 결혼생활은 크산티페를 악처의 대명사로 만들었고, 예수께서는 선배들의 간난산고와 같은 결혼생활에 질려서 아예 독신을 고수하셨다고 했다.

이처럼 결혼생활이란 4대 성인조차도 극복하지 못한 난제지만, 그럼에도 보통 사람인 우리가 4대 성인보다 결혼생활은 더 행복하게 영위할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며 청나라 선비 심복의 ‘부생육기’를 예로 들고 그 자리에서 딸 부부에게 그 책을 선물했다.

4대 성인은 어떻게 정해졌을까? 인류의 스승인 4대 성인의 선정 기원으로 근대 일본의 철학자 이노우에 엔료가 거론된다. 일본의 철학 명문 토요대학(東洋大學)의 전신인 철학관의 설립자 엔료는 붓다, 공자, 소크라테스, 칸트를 가리켜 4대 성인이라 불렀다. 이후 우리나라 개신교에도 큰 영향을 미친 기독 사상가이자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 간조가 「나의 신앙고백」에서 칸트 대신 예수를 넣은 이후 일본과 한국에서 현재와 같은 4대 성인 분류가 지배적이 됐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4대 성인이라는 개념은 우리 주변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통용되는 듯 보이는데, 서구 사회에는 4대 성인 개념이나 분류가 없을까?

‘4대 성인’이라는 정확한 명칭은 보이지 않지만 서양에도 그 비슷한 분류는 존재한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위대한 철학자들’이라는 방대한 저서의 제1권 맨 앞에서 소크라테스, 붓다, 공자, 예수를 결정적인 패러다임 창시자들로 분류했다.(독일어로는 ‘Die Maßgebende Menschen’, 영어 번역으로는 ‘Paradigmatic individuals’) 이들 다음으로 중요한 인물로는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 칸트를 철학적 사고의 아버지로 들었다. 한편, 네 분에 관한 내용만 발췌해 출간한 별도 단행본들도 있고, 우리나라에도 이 네 분에 관한 내용만 번역돼 있기도 하다.

학부 신입생 대상으로 ‘인간의 탐색’이라는 교양과목을 하나 담당하는데, 최근 몇 년간 매 학기 중간고사 때 4대 성인의 주요 가르침을 정리하고 인류에 미친 영향력 측면에서 순위를 매겨 보라는 에세이 과제를 낸다.

학생들의 답안지를 보면, "4대 성인의 이름은 잘 알지만 정작 그분들의 가르침이 뭔지는 전혀 몰랐음을 새삼 알았다", "내가 감히 4대 성인의 서열을 매기다니 송구한 마음이다", "그렇지만 서열을 매기는 작업은 꽤나 도전적이고 흥미롭다"는 반응이 많았다. 순위에 관해서 보면 인문학적 사유와 영성을 중시하는 학생들은 예수와 붓다의 순위를 높이 매기는 반면, 정치사회와 과학 등 실용적 측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생들은 공자와 소크라테스를 앞 순위에 놓는 경향이 있다. 기독교와 불교 등 종교인들도 꽤 될 터인데 1순위가 골고루 분포되는 것도 흥미로운 현상이다.

단순히 4대 성인의 가르침을 정리하는 것과 그분들의 서열을 매기는 것은 요구되는 사고의 깊이에 현저한 차이가 있다. 순위를 매기기 위해서는 4대 성인의 가르침 내용뿐만 아니라 2천500년간 인류의 역사, 세계의 정신문화 현황,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에서의 재평가 등 여러 관점에서의 종합 검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발칙한 과제를 출제하는 내 마음도 좀 죄송스럽지만 4대 성인이야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발칙하고 대담한 정신혁명을 도모했던 분들이기에 이 정도의 ‘skeptical animus(유대인의 저돌적 질문 자세)’는 충분히 용인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 과제를 계속한다.

서구 문명의 뿌리인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동양 정신의 근본인 유학과 불교가 수천 년 인류에 미친 지대한 영향력을 생각하면 이 네 분을 4대 성인으로 분류해 인류의 스승으로 삼는 것은 합리적인 생각이자 동서양 공히 보편적 정서라고 봐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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