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볼 때마다 내가 너무 혐오스러워!" 스스로를 ‘한남’ 또는 ‘개저씨’라 칭하는 친구가 한 말이다.

‘한남’은 한국 남성의 준말, ‘개저씨’는 개와 아저씨의 합성어로 두 단어 모두 남성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신조어다.

50대 남성인 친구는 이 같은 단어를 적극 차용해 스스로를 까내리는 데 머뭇거림이 없었다.

그와는 취재원과 기자 신분으로 만나 얼결에 친해졌다. 

그는 거의 처음부터 ‘개저씨’인 스스로에 대한 자기혐오를 감추지 않고 드러냈다.

아직 총각인 그는 "차라리 돌싱(돌아온 싱글, 이혼 남녀)이 낫지. 이 나이에 미혼이라고 하면 하자 있는 줄 안다"며 자신이 사회에서 얼마나 혐오받는 대상인지 열변을 토했다.

주름진 얼굴이며 작아진(?) 해면체를 한탄하며 노화 자체에 질려 버린 듯 "오래 살기 싫다"고 학을 떼기도 했다.

스스로를 부르는 멸칭도 다양했다. 그는 기본으로 ‘한남’이자 ‘개저씨’였으며 때에 따라 ‘폐품’이나 ‘폐지’, ‘혐오 덩어리’가 됐다.

그러나 그의 괴짜 같은 자기혐오에는 일견 유쾌한 구석이 있었다. 그가 취한 태도는 자신이 ‘한남’이 아니라고 불쾌해하거나 ‘개저씨’가 아니라고 언성을 높이는 쪽보다 훨씬 여유로워 보였다.

그 세대와 성별에 속하는 이가 직접 비하어를 남발한 덕에 절대 금기 같던 비하어들은 더 이상 조심스럽지 않았으며, 성별 갈등이나 세대 갈등을 논하는 엄중하고 날선 사회 분위기에서 오히려 가벼워졌다.

게다가 그는 나이를 물어본 기자에게 "젊은 사람답지 않게 ‘한남’ 같은 면이 있다"고 하질 않나, 중년 남성 넷이 함께 모인 자리서는 "‘개저씨’들만 모여 있어 싫다"고 질색하는가 하면, 상대도 가리지 않았다.

그러한 무차별 혐오에 묘하게 웃음이 났다. 어쩌면 그는 흔히 ‘게슈탈트 붕괴’라 알려진 심리 현상 ‘의미 포화(Semantic Satiation)’를 전략 삼는지 몰랐다.

의미 포화란 같은 단어나 신호를 반복해 접하다 본래 뜻을 잊어버리는 심리 현상을 일컫는다.

그는 의도치도 않고 비하어 포화로 되레 그 단어들이 가진 혐오와 갈등을 퇴색시켰다. 꼭 진중하고 조심스러운 접근만이 갈등을 푸는 정답은 아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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