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기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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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을 앞둔 여야의 표심 잡기가 치열하다. 특히 합계출산율 0.7명대로 인구절벽 위기에 직면한 대한민국에서 저출산 극복은 반드시 풀어야 할 시대적 과제다. 그래서인지 정치권은 관련 공약들을 내세우며 해결사를 자처하고, 여론 역시 이에 주목한다.

이렇듯 우리 사회가 출산율 올리기에 집중하는 사이,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는 건 아닐까? 모두가 알지만 차마 직면하고 싶지 않은 사실, 바로 홀로 아이를 키우는 한부모가정이 처한 서글픈 현실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등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부모가정 빈곤율은 47.7%로, 양부모 가정 빈곤율 10.7% 대비 4배에 달한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31.9%보다 15.8%p 높은 수치다. 여기에 한부모 네 명 중 한 명은 육아와 경제활동 병행에 어려움을 겪으며 미취업 상태다. 그 주된 원인 중 하나는 안타깝게도 ‘양육비 미지급’에 있다. 

여성가족부의 ‘2021년 한부모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양육비를 한번도 지급받은 적이 없다"는 답변이 무려 72.1%에 이르렀고, "최근에는 받지 못했다"는 답변도 8.6%였다. 정기적으로 양육비를 받았다는 답변은 15%에 불과했다. 한부모가정 10가구 중 8가구는 오직 양육자 혼자 힘으로 자녀를 양육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셈이다.

이유가 뭘까? 무엇보다 양육비 문제를 개인 간 사적 채무로 보고 양육자가 일일이 소송으로 해결하게 한 현행 법·제도는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최근 법 개정을 통해 악의적인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출국금지·운전면허 정지·명단 공개와 같은 제재 조치와 함께 형사고소까지 가능토록 했지만, 이 모든 게 ‘감치명령’을 전제로 한 까닭에 막상 현장에서는 그림의 떡이 된 지 오래다. 운 좋게 감치명령을 받아 제재 조치가 이뤄졌다고 해도 양육비 미지급자에게 주는 타격감이 약하다는 건 덤이다. 그래서인지 2021년 7월부터 2023년 8월까지 제재 조치를 받은 양육비 미지급자 772명 중 고작 9%인 69명만이 이를 지급했고, 나머지 91%는 한 푼도 주지 않았다는 여성가족부 통계는 뼈아프다. 

더 큰 문제는 위 통계 속 데이터가 자녀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한 푼이라도 양육비를 받아내고자 자신의 시간과 비용을 들여 열심히 뛰어다닌 양육자에 한정된 것이지, 실제 자신의 운명이라 체념한 채 양육비 받기를 포기하고 살아가는 대다수 양육자들은 통계 밖에 있다는 점이다.

양육비는 아이의 빈곤을 예방하고 건강한 생존을 위해 반드시 지급돼야 한다. 굳이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상식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가 양육비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할 이유다. 그리고 그 해답은 양육비 대지급제 도입에서 찾을 수 있다. 

양육비 대지급제는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양육자에게 국가가 일정 액수를 먼저 지급한 후 비양육자에게서 이를 회수하는 제도다. 독일과 스웨덴, 핀란드 등에서는 진작부터 시행 중이다. 우리나라도 지난 대선에서 주요 대권 후보들이 양육비 대지급제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지금도 2건의 특별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일 정도로 충분히 검증된 제도다. 

양육비 대지급제를 도입하면 양육비를 받기 위해 더 이상 지난한 법적 절차를 거칠 필요가 상당 부분 없어진다. 단순히 국가에 미지급 사실을 신고하면 양육비를 지원받기에 양육비 미지급으로 인한 아동빈곤을 예방하고, 안정된 환경에서 아이가 성장하는 것이다. 여기에 국가는 대신 지급한 양육비 회수를 위한 추심 절차를 직권으로 취하면서 양육비 미지급자에게 ‘양육비는 반드시 지급해야 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주게 된다. 마치 체납세금을 징수하듯 양육비 미지급 문제가 공적 채무로 전환되면서 양육비 이행 역시 강화되는 셈이다.

출산율 붕괴가 현실화된 지금, 이미 태어난 아이에게 갈 양육비조차 제대로 챙겨 주지 못하면서 아이 낳아 키우기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공언은 크게 와 닿지 않는다. 아이들이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받도록 이제 양육비 대지급제 도입은 선택이 아닌 필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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