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어릴 적 자루나 봉지에 무엇을 싸고 담아 윗부분을 조일 때 공기 한 숨 들어가지 않도록 꽉 조여 매면 그 모습을 대하는 어른들은 꼭 한마디씩 덧붙이셨다. "너무 꽉 옹쳐매지(동여매지) 마라. 숨이라도 틔워야지. 세상만사 너무 옹치면 엄하기만 해."

여러 상황, 여러 이야깃거리 소재가 되는, 그러면서 명암과 호불호가 생각과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로 오르락내리락할 것이다. 헐거움 역시 같은 처지일 테다.

오랜 기간 조직생활을 하며 관리자, 리더가 됐을 때 이 그립(grip) 문제는 언제나 첫 번째 과제였다. 어느 상황, 어디에서, 언제, 누구에게 합리적이고 유효하게 행사하고 답을 얻느냐가 항상 생각의 근간이 됐다고 생각한다.

오래된 사건이지만 ‘가습기 살균제’, ‘구미 불산’ 사고 등 화학물질 관련 사고가 터지자 화학물질등록평가법(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이 시행됐다. 제조·수입되는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심사하고 취급 기준을 강화하자는 취지였다. 문제는 구구절절 옳은 방향 제시이자 처방전이지만 결국은 중소·중견기업 부담을 고려하지 못한 통제 일방의, 그야말로 ‘투자를 막는 킬러규제’로 인지됐다. 

쉽게 말하면 화학물질 유해성 등록기준 양(量)을 100㎏으로 설정했다. EU와 일본은 1t, 미국은 10t 이상인데 너무 동여매고 가려내겠다는 의지였다. 사고 낮은 시설, 검사기관에 검사받은 업체까지 환경부 결과 제출을 요청했다. 물론 새해 개정안이 통과되고 중소기업 발목을 잡던 규제가 완화되면 2030년까지 대충 기업 1만6천여 곳에서 3천억 원의 경제적 이득을 보게 되리라 전망된다.

ESG 공시 의무화 역시 2025년부터 자산 2조 원 이상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를 기준으로 시행 방침이었으나 정책당국은 2026년으로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국내 산업의 분야별 특성지표나 공시항목이 면밀하게 분석되지 않았고, 지속가능보고서를 통한 ESG의 자발적 공시와 사업보고서 내 의무공시 역시 기업들이 수용하기 쉽지 않다. 2011년도 국제회계기준(IFRS)이 실무적 검증에서 많은 격차를 나타내는 점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탄소배출량 추정을 법적 리스크로 연결시키는 무리(?)한 부담이 과연 ESG에 대한 기초적 접근이라는 뜻인가.

추정치에 추정으로 공시 위반 리스크를 만들어 내면 기업 활동은 책임만 지게 된다. 인증제도 역시 전 세계 기업 중 4분의 3이 ESG인증 준비 자체가 돼 있지 않다. 기업의 ESG 경영활동이 제3자에게 인증을 받으려면 인증에 대한 기본 항목이 탄탄하게 지지를 받아야 한다. 쉽게 말하면 ESG 문법은 금융이나 회계, 환경, 법률 같은 특정 집단의 용어가 돼서는 안 된다. 기업의 생리, 생태계를 주도면밀하게 이해하고 그 당위성을 자율적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시켜야 한다. ESG에 대한 국제지속가능기준위원회(ISSB)의 국제표준을 우리 기업에 그대로 적용할 경우 해외 투자자들에게 국내 기업이 저평가되는 위험도 일부 감수해야 한다.

중대재해법 역시 중소기업의 준비성 부족으로 난관에 처했다. 우선 지난해 8월 조사한 892개 업체 응답을 보면 35.4%가 전문인력 부족, 예산 부족 27.4%, 업무 이해가 어렵다 22.8%로 나왔다. 이달 27일로 만료되는 50인 미만 중소기업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2026년까지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산업안전은 기업 상황이나 업종에 따라 필요한 수준이 다르다는 점과 중소기업 관련 비용지출에 대한 재무구조 이해와 합리적 현실 인식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ESG는 시대와 인간을 통찰하는 화두로, 꾸준히 CEO의 자기존재감을 이끌어 내도록 독려해야 한다. 방식이나 채널, 검증 등 이 모든 것은 자율성이 최우선이고, 그 다음 필요한 규제나 구속은 언제나 헐거워야 한다. 유용함과 효율성은 그 안에 있다.

‘인식의 틀’은 헐겁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 엄격하게 동여매듯 그렇게 접근한다. 지구환경, 이상 징후에 대한 여러 가지 우려, 사회적 가치에 대한 선과 악의 혼재, 정도경영에 대한 모호성이 어느 수준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누구든 궁금해하고 문제의식을 가졌으며 고민까지 하는 게 현실이다. 많은 중소기업 CEO들은 지금도 환경문제에 최선을 다해 조바심을 낸다. 

사회적 선한 가치 전파, 수용은 수도 없이 많은 채널을 통해 주입되고 이해되며, 정도경영 역시 노사 간 힘의 균형과 선한 관계론이 지배적이다. 자꾸 동여매지 말아야 한다. 자본주의 역사 100년이 넘었으면 CEO에게 그만한 역량은 넘칠 만큼 충분히 함양됐다고 믿고 규제 최소화 의지로 답을 찾아가야 한다. ESG는 경영, 자본, 법률, 회계의 문법이 아니다. 기업가의 정의로운 자기 확신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