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인체 안전 성분 문구 (CG)./연합뉴스
가습기 살균제 인체 안전 성분 문구 (CG)./연합뉴스

법원이 가습기살균제 원료물질 유해성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정부가 피해자나 유족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가습기살균제 사태와 관련해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사례다.

서울고법 민사9부(성지용·백숙종·유동균 부장판사)는 6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들 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3명에게 300만∼5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공무원이 당시 시행 중인 법을 따랐으므로 고의나 과실에 의한 위법행위가 있다고 할 수 없다’며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이나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와 같은 이 사건 화학물질에 대한 유해성 심사와 그 공표 과정에서 공무원의 재량권 행사가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어 사회적 타당성이 없거나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해 위법"고 판시했다.

또 "환경부 장관 들이 불충분하게 유해성 심사를 했음에도 그 결과를 성급하게 반영해 일반적으로 안전성을 보장한 것처럼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고시한 다음 이를 10년 가까이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용도와 사용 방법에 관한 아무런 제한 없이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공표하는 경우 국민의 건강에 위협이 된다는 점을 예견할 가능성이 있었다"며 "불충분한 심사와 고시에 따른 가습기살균제 제조·유통은 국민의 건강·생명·신체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히 크고 직접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원고 5명 중 2명은 위자료와 동일한 성격을 가진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상 구제급여조정금을 상당 액수 지급받았으므로 이를 청구할 수 없다며 기각했다. 2008∼2011년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뒤 원인 모를 폐 손상으로 병원에서 치료받거나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은 2014년 국가와 제조업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심은 2016년 제조업체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지만 국가에 대한 청구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기각했다. 이후 원고 10명 중 5명이 국가를 상대로 패소한 부분만 항소했다.

환경부는 판결 후 "판결문 검토와 관계부처 협의 후 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전했다.

안경환 기자 jing@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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