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수 동산중학교 교장
황규수 동산중학교 교장

인천의 모습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 찍은 사진과 비교해 보면 얼마나 변화했는지 실감하게 된다. 특히 바다에 접한 인천은 여러 곳이 매립되는가 하면 복개되기도 하면서 택지나 공장부지 등으로 바뀌어 이전 흔적은 찾아볼 수 없는 장소도 많이 생겼다. 

지금은 동구 화도진축제 주요 행사 장소 중 하나로 이용되는 수문통 복개 도로가 과거에는 하천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렇게 볼 때 이 같은 지역적 특성이 잘 나타난 작품들을 검토해 보는 것은 나름대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누더기 삼베 홑이불 덮고/ 땀에 절은 때묻은 얼굴/ 마음처럼 초롱초롱한 눈으로/ 별을 바라보며 잠을 청하는/ 길바닥 쪽마루 위의 아이야// 너의 일과가 그렇듯/ 우리들 사는 것이 죄다 그렇듯/ 흐름답게 흐르지도 못하면서/ 수문통 짠 바닷물이/ 온종일 찌는 냄새 피우고// 해만 지면 개천가에 모여드는 무리/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은/ 보잘것없는 그리스도/ 착하디착한 몸뚱아리들은/ 우리 역사의 냄새를 더듬는다// 어쩌다 한번은 눈먼 망둥이 올라와/ 파도 없어도 갈매기는 날고/ 백사장 없어도 별은 저토록 빛나느니/ 아이야 이곳이야말로/ 우리가 고동 울리고 출발할/ 바다이어라."

이 시는 호인수의 ‘수문통’이다. 본래 수문통 지역이라 하면 큰 갯골이 내륙으로 깊숙이 이어진 곳을 일컫는다. 그래서 이같이 지칭되는 장소가 여러 곳 있다. 그럼에도 이 시에서 여기가 지금의 인천 송현2동 지역을 뜻한다고 생각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시인이 이 부근에서 신부로 활동했다는 사실 말고도 이 시에는 과거 이곳의 지역적 특성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수문통 하천이 복개된 시기는 1991년으로, 1980년대만 해도 여기에는 수문통 시장이 있었다. 기다란 복도와 같이 상가가 양옆으로 죽 늘어선 이 시장은 바닥이 나무판자로 돼 있었다. 그래서 바닥 아래로 바닷물이 흐르는 것이 보일 정도였으며, 비가 많이 오면 바닷물이 수챗구멍으로 역류해 들어와 물로 범람하기 일쑤였던 이곳은 대체로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낮에도 어두워 방에는 불을 켜야만 했으며, 그 빛은 베니어판 사이로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수문통 시장이 끝나는 곳에는 개천이 이어졌는데, 거기서는 시장과 동네에서 내보내는 생활하수로 썩는 냄새가 났고 그 물빛은 늘 까맸다.

이렇게 볼 때 시 ‘수문통’은 시인이 이 작품을 쓸 당시인 1980년대 이 지역 사람들의 삶을 잘 반영해서 나타낸 것으로 이해된다. 특히 이 시의 1연과 3연은 시적 대상이 어린아이들로 설정돼 애처로움을 더한다. 

그런데 그것이 어디 이들만의 문제인가? 2연에는 그것이 단지 ‘너’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공통된 문제임을 제시해 주목된다. 더욱이 2연에 이어 3연에서 시인은 그 문제의 원인을 역사적 차원에서 다뤄 관심을 끈다. 흐름답게 흐르지 못함이 온종일 찌든 냄새를 피우듯, 우리의 역사적 현실 상황도 이와 같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4연에서는 수문통을 우리가 고동 울리고 출발할 바다로 표현해 주목을 요한다. 

파도가 없어도 나는 ‘갈매기’나 백사장이 없어도 빛나는 ‘별’처럼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 할지라도 희망은 남았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최근 인천시가 수문통 복원 방안을 다시 모색한다는 기사(기호일보 2024년 1월 8일자)를 접했다. 물론 수문통을 복원해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데에는 사업 타당성 검토 용역 결과 경제성이 있어야 한다. 또 주민들의 반대 의견도 수렴해 해결해야 한다.

이처럼 개발로 인해 옛 흔적조차 사라진 현실 상황에서 그곳을 복원하는 일은 쉽지 않다. 

작품의 배경지에 벽시 또는 시비 등을 제작해 놓는 건 어떨까 싶다. 소중한 문화 공간은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문학도시로 인천을 살리는 또 하나의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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