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기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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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살인자○난감’에서는 배우 손석구의 어린 시절을 볼 수 있다. 쌍꺼풀 없는 눈과 웃을 때 살짝 찡그리는 듯한 표정까지 영락없는 리틀 손의 모습이다.

어디서 이토록 닮은 아역을 섭외했을까 찬사를 하며 아역배우의 정체에 대해 궁금증이 커질 무렵, 제작사 측에서 ‘딥페이크’라는 뜻밖의 답변을 내놨다. 손 씨의 어린 시절 얼굴 사진을 조합해 이를 딥페이크 영상으로 만든 후 실제 연기를 한 아역배우 얼굴에 합성했다는 것이다. 제작비가 크게 증가했지만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한 피치 못할 선택이었다고 한다.

그간 배우의 나이대를 바꾸기 위해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얼굴형과 피부, 주름살을 보정하는 방식이 동원됐지만 딥페이크라는 신기술이 이를 빠르게 대체하는 형국이다.

딥페이크(deepfake)란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인공지능(AI) 기술 딥러닝(deep learning)과 ‘가짜’를 의미하는 단어인 페이크(fake)의 합성어로, AI 기술을 이용해 사람의 이미지·영상·음성을 합성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이미 할리우드에서는 AI가 배우가 젊은 시절에 연기한 영상을 학습해 이를 토대로 각 장면에 맞게끔 배우의 리즈 시절을 그대로 재현하는 AI 디에이징 기술에, 배우의 젊은 시절 목소리를 그대로 재현하는 딥보이스까지, 딥페이크는 하루 다르게 진화한다. 지난해 개봉한 ‘인디애나 존스5’에서 80대 배우 해리슨 포드가 40대 시절을 그대로 연기했음에도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간 듯 전혀 이질감이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듯 딥페이크는 영화와 드라마, 예능, 개인방송은 물론 심지어 뉴스까지 빠르게 장악하며 차세대 미디어산업의 핵심이 됐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 기술의 진보는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최근 다국적 금융그룹의 홍콩지부 직원이 딥페이크 영상에 속아 2억 홍콩달러를 송금해 편취당한 사건은 그 단적인 예다.

해당 직원은 본사 최고채무책임자(CFO)와 평소 알고 지내던 동료들이 함께 참석한 화상회의에서 내려온 지시에 따라 돈을 입금했지만, 알고 보니 이는 사기범들이 딥페이크로 조작한 영상이었다. 마치 한 편의 범죄영화를 보듯 잘 짜인 시나리오가 현실화된 것이다. 

또 피해자 얼굴을 음란물과 합성한 소위 ‘딥페이크 포르노’의 경우 오래전부터 우리 일상을 위협해 온 대표적 사회악이다. 최근에는 SNS에 올린 얼굴 사진으로 딥페이크 포르노를 만든 후 이를 배포한다며 돈을 요구하는 새로운 형태의 스미싱 범죄까지 등장했다고 하니, 이쯤 되면 AI 발전의 최대 장애물은 딥페이크가 아닐까 싶다.

딥페이크로 인해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뉴스가 가능해졌다는 건 최근 새롭게 떠오르는 비극이다. 그간 카더라식 뉴스로 도배하며 우리 사회 갈등을 부추겨 이를 먹이 삼아 생존했던 이들에게 딥페이크는 천금같은 기회가 됐다. 공신력 있는 누군가의 얼굴과 목소리로 가짜 뉴스에 생명을 불어넣어 소위 ‘딥페이크 뉴스’가 가능해진 것이다.

지난 1월 미국 뉴햄프셔주 예비선거에서 유권자들에게 조 바이든 대통령의 목소리로 "투표하지 말라"는 전화가 돌았지만, 알고 보니 이는 AI가 만든 가짜였다.

또 아동 성매매 범죄자인 제프리 엡스타인과 관련된 사건 서류 파일이 공개된 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엡스타인을 비롯한 10대 여성들과 함께 있는 이미지가 SNS를 통해 유포됐지만 이 역시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짜였다. 자칫 미국 대선이 딥페이크 뉴스에 의해 철저히 농락당할 위기 순간이었다. 

오는 4월 총선을 앞둔 우리나라에서는 선거 90일 전부터 딥페이크를 이용한 선거운동을 금지하며 선제적 대응 중이다. 하지만 진영 간 극단적 대립을 반복하는 현 상황에서 ‘선을 넘는 자’가 절대 없을 거라 단정하긴 어렵다.

딥페이크는 분명 축복이다. 하지만 그 축복 끝에 남은 건 안타깝게도 서로에 대한 불신이다. 딥페이크가 가져온 불신의 시대, 이를 제대로 끝내지 못한다면 AI가 가져올 미래 역시 결코 해피엔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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