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식 편집부국장
한동식 편집부국장

요즘 ‘싸가지’ 논란이 한창이다. 싸가지 하면 떠오르는 이가 있다. 배우 윤문식이다. 신경질적인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버릇없이 나대는 동네 얼치기들에게 "이런 싸가지하고는"이라며 내뱉는 걸쭉한 호통에 막힌 속이 탁 트이는 듯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근자에는 아시안컵 축구대회 준결승 전날 이강인 선수가 대선배인 손흥민 선수에게 드잡이를 하면서 마찰을 빚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뒤 정치권에서도 연일 싸가지 타령이다. 젊디젊은 대표와 노쇠한 정치인의 세대 간 언쟁도 지긋지긋하게 이어진다. 체육계는 물론 정치권과 우리 일상에서도 가장 흔히 듣는 단어가 됐다. 

굳이 어법을 따진다면 싸가지가 맞는 말은 아니다. 싸가지는 ‘싹수’의 전라도 방언이다. 싹수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이나 사람이 장차 될 것 같은 낌새나 조짐’으로 정의된다. 그런 점에서 싹수는 비꼬듯 ‘노랗다’는 색칠만 하지 않으면 희망적인 단어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잘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바르게 성장할 자양분을 제공하면 된다.

방언인 싸가지로 바뀌면 상황이 달라진다. 국문학적 표현을 빌리자면 ‘사람에 대한 예의나 배려를 속되게 이르는 말 또는 그러한 예의나 배려가 없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싹수와 달리 싸가지는 자체가 부정적인 단어다. 그냥 버릇이 없거나 기본적인 예의가 없는 사람에게 쓰인다.

그래서인지 싸가지에 대한 여러 해석들 역시 썩 긍정적이지는 않다. 어찌 보면 더 고약하다. 유교에서 얘기하는 인간이 갖춰야 할 4대 덕목인 인(仁), 의(義), 예(禮), 지(智)를 갖추지 못한 ‘진짜 싸가지’가 있다. 어질면서도 도리를 다하고, 예의가 바르면서도 지혜로움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물론 상사와 부하의 상하관계 그리고 동료들과의 평등적인 관계에서도 긍휼과 배려의 덕목이다. 이렇게 인간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기본 덕목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싸가지다. 

또 다른 싸가지는 염치(廉恥), 눈치, 수치(羞恥), 가치(價値) 등이 없는 ‘멀리해야 할 싸가지’다. 받을 줄만 알고 줄 줄은 모르는 염치없는 사람, 상황에 맞게 행동하지 못하는 눈치없는 사람, 부끄러운 마음이 없어 상대방에 상처를 주는 수치를 모르는 사람, 자신만 좋아해야 한다는 착각으로 타인의 불행을 자신의 행복으로 여기는 가치없는 사람이 해당한다. 그래서 염치, 눈치, 수치, 가치가 없는 사람과는 무조건 멀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렇게 보면 싸가지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에서 유래한 ‘나르시시스트(narcissist)’와 유사하다. 이들의 특징은 자신에 대한 존중감은 매우 큰 반면 상대에 대한 공감능력이 부족하고, 자신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면서 관심과 인정에 대해서는 매우 강한 욕구를 가졌다고 한다. 매우 오만하고 공감능력이 부족해 다른 사람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한마디로 ‘서양식 싸가지’라고 생각하면 될 듯싶다. 어쩌면 나르시시스트는 아기자기한 우리 토종 싸가지보다 10배쯤, 아니 100배쯤은 더 싸가지일지도 모르겠다. 세계를 전장으로 내몬 히틀러나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여기에 속한다고 하기에 그렇다. 주눅이 든다. 

어찌됐든 이런 싸가지나 나르시시스트는 어느 조직에나 한둘씩 있게 마련이다. 언행 자체도 공격적이고 상대방이 상처를 입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도움을 받거나 피해를 주더라도 감사나 사과는 남의 일이다. 자기보다 약하다 싶으면 업신여기고, 윗사람이면 무례하게 대들거나 뒷담화가 일쑤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의 평판을 망가뜨리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상대방을 매우 힘들게 한다. 한 명의 싸가지만으로도 구성원 모두가 고통이다. 

MZ세대를 겨냥하기도 한다. 좀 당황스러울 정도로 직설적이고 거침없지만 뒷담화 없이 솔직하다는 점에서 싸가지로 색칠하기에는 많이 담백하다. 이렇게 뱅뱅 돌아 MZ세대나 누구를 콕 찍어 도마에 올릴 일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싸가지는 따로 있기 때문이다. 언제 회복될지 모르는 암울한 경제 탓에 서민들은 하루하루 버티기 힘들다. 의료 공백과 경기 침체, 하루가 멀다 하고 문을 닫는 소상공인들. 그들에게는 오늘 그 자체가 희망 없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네 탓 공방에 뾰족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는 싸가지로 비치지 않을까 싶다. 보는 시각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래서 대통령부터 시작해 여야 정치인 그리고 국정을 담당하는 정부 모두 국민들에게는 비호감이다. 최소한 자신들을 뽑아 주고 믿는 국민들에게 뒤통수에 꽂히는 손가락질은 받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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