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한국법치진흥원 이사장/법학박사
이선신 한국법치진흥원 이사장/법학박사

요즘엔 빈번하지 않지만, 예전엔 가정이나 학교에서 아동과 학생을 폭행하거나 가학하는 사례들이 비일비재했다. ‘나쁜 버릇을 고쳐야 한다’는 빌미로 부모나 교사가 아이에게 손찌검을 하고 매로 때리는 일도 매우 흔했다. 

지금 60대 이상 성인들은 대개 그런 환경 속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 시절에는 숙제를 안 해 오거나 지각한 경우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중학교 입시에 대비해) 오전·오후에 두 번 치르는 모의고사에서 정답을 못 맞힌 문항 개수만큼 담임선생님이 학생의 손바닥이나 종아리를 매로 때렸다. 중학교 시절에는 미술시간에 준비물을 빠뜨리고 등교한 학생들, 음악시간에 잡담한 학생들을 주먹으로 심하게 때리거나 매질을 했다. 대나무 뿌리로 만든 딱딱한 매로 머리통을 때려 학생이 피를 철철 흘리는 끔찍한 일도 있었다.

중학생 시절 어느 겨울 아침 운동장 조회 시간에 교장 선생님이 "교복 바지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나약한 모습으로 등교하는 학생들을 보면 너무나도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일제강점기 중학교에 다닐 때에는 선생님이 교복 바지 호주머니 입구를 재봉질로 봉하도록 했었다. 앞으로는 아무리 춥더라도 교복 바지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등교하는 일이 절대로 없도록 하라"고 훈화말씀을 했던 기억도 있다. 

이처럼 아동이나 학생을 폭행하거나 가학하는 사례들이 비일비재했지만, 대개 ‘사랑의 매’라는 말로 미화돼 사회적으로 널리 용인됐다. 이런 안 좋은 전통이 생겨난 데는 유교문화 영향이 크게 작용했지만, 법제가 너무 관대한 데에도 그 원인이 있었다.

과거 우리 민법은 ‘부모의 징계권’을 규정했다(제915조:친권자는 그 자녀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 부모의 징계권 조항은 1958년 제정되고 1960년 시행된 우리 민법에 처음 규정됐다. 우리 민법 시행 이전에는 일본 민법을 차용해 활용했는데(이를 ‘의용민법’이라 한다), 이 일본 민법에 규정됐던 징계권 규정(일본 민법 제822조:친권을 행사하는 자는 감호 및 교육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그 자식을 징계할 수 있다)을 우리 민법이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2021년 민법을 개정해 징계권 조항을 삭제했다. 징계권 조항이 자녀에 대한 부모의 체벌이나 가혹한 훈육을 허용하는 근거로 오인돼 아동학대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있었기에 법무부가 징계권 조항 삭제를 골자로 하는 법률안을 마련해 2020년 10월 15일 국회에 제출했고, 2021년 1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다. 당시 법무부는 "부모의 자녀에 대한 체벌 금지는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가장 근본적인 규범이다. 민법이 사법(私法)체계의 기본법임을 고려할 때 이번 법률안의 국회 통과는 자녀에 대한 체벌과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일본에서도 사회적 논란 끝에 얼마 전 관련 민법 규정을 개정했다(제821조:친권을 행사하는 자는 전조의 규정에 따라 양육과 교육을 제공함에 있어 아동의 인격을 존중하고 연령과 발달 정도를 고려해야 하며, 체벌 등 아동의 정신적·신체적 발달을 해칠 수 있는 언행을 해서는 아니 된다). 부모의 징계권을 민법에 남겨 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었는데, 우리가 일본보다 먼저 부모의 징계권 조항을 삭제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 폭행이 만연한 데에는 일본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과거 어른들은 "조선 사람은 맞아야 말을 듣는다"며 폭행을 정당화하는 말을 습관처럼 하기도 했다. 식민지 시절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업신여기고 학대하며 하던 말을 무심코 배워 그런 식으로 자기비하를 했었던 것이리라. 어떤 학자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한국에서 횡행하는 갑질 악습은 일제강점기에 생겨난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우리 사회에서 폭행과 갑질 등 나쁜 잔재를 퇴치하려면 우리 법제에 수용된 일본 법제의 ‘후진적 요소’를 찾아내어 조속히 떨쳐내야 한다. 3·1절 제105주년을 맞으면서 간절하게 떠올린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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