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프랑스 의회가 세계 최초로 ‘여성의 낙태 자유’를 명시한 헌법 개정안을 승인했다. 상·하원이 합동회의를 열어 헌법 개정안을 표결한 끝에 찬성 780표, 반대 72표로 가결 처리했다. 물론 프랑스는 1975년부터 낙태가 허용해 온 바, 이번 개헌을 통해 실질적으로 바뀌는 건 없다.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 사회 보장 적용 원칙에 따라 임신 중지를 의료 절차로 보고 비용 지원도 이뤄지는 상황이다. 오히려 이번 조치는 미국을 비롯해 최근 낙태권을 위협받는 나라의 여권 운동에 더 큰 영향을 미칠 듯하다.

미 연방대법원은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에서 개인의 자유를 명시한 헌법 14조에 따라 낙태권을 인정했다. 그런데 이것이 2022년 보수 성향 대법관이 우위를 점하면서 폐기됐다. 헌법 조항에 낙태권이 명시되지 않은 등 기존 판결이 기본권 보장 범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흐름에 경각심을 가진 프랑스 정치권이 여성의 건강권과 자기결정권을 최상위 기본권에 명시한 것 아닌가 싶다. 법안 통과 후 외교부 장관도 "프랑스 헌법을 넘어 유럽 헌장에 이 내용이 명시되길 바란다"고 했다.

낙태는 개인 문제인 동시에 사회문제다. 자유권(자기 결정권)과 생명권(태아 생명)이라는 두 헌법 정신이 충돌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시기에 따른 낙태 허용도 논란이 있긴 마찬가지다. 생명 서열화, 예외적 살인이 허용된 생명권 등 모순된 상황이 발생한다. 태아의 생명권 보장을 강제해야 태아 생명이 보호되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태아 생명은 임신 여성에 대한 신체적·사회적 보호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는 상호 보완적인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분법적 대립 구도가 달갑지만은 않은 이유다. 

그럼에도 낙태권 보호는 거스를 수 없는 세계 흐름이 됐다. 개방적 시스템을 근간으로 하는 한국 사회가 이에 뒤처지는 것도 상상하기 힘들다. 그런 흐름에 맞춰 헌법재판소가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지만, 안타깝게도 후속 입법 부재로 ‘임신 중지 절차와 상담, 정보 제공, 시술기관, 기준, 비용, 건강보험 지원 여부’는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낙태가 어려운 사회는 역설적으로 여성의 임신 가능성을 더 감소시킬 수 있다. 이도 저도 아닌 법적 공백 상태부터 서둘러 해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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