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피의자 신분인 상황에서 주호주 대사에 부임해 논란이 됐던 이종섭 대사가 결국 사퇴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9일 외교부 장관이 제청한 이 대사의 면직안을 재가했다. 주호주 대사로 임명된 지 25일 만이다. 방산 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 참석을 위해 귀국한 지 8일 만이기도 하다. 출국 이후 논란이 거세지자 회의 참석을 명목으로 일시 귀국했지만 논란이 지속되자 부담을 느껴 스스로 거취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 또한 이 대사의 사의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데는 4·10 총선이 열흘 남짓 남은 상황에서 이 대사 임명 논란이 총선 판세에 주된 악재로 작용하는 데 대한 부담감과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대통령실은 이 대사의 사퇴에는 거리를 뒀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야권을 중심으로 파상공세가 이어지고 총선 국면에서 여론이 악화하자 여권에서조차 이 대사의 거취 결단을 재촉하는 요구가 이어졌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각종 여론조사 하락세가 심상치 않은 상황으로 돌아가자 대통령실 내부에서도 위기감이 팽배해졌고, 이 대사의 자진 사퇴 형식을 빌려 윤 대통령이 이같이 결단했다는 후문이다.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이제라도 민심을 받아들인 건 다행이다.

하지만 이 대사 임명 논란의 파동은 적잖은 생채기를 남겼다. 민심 이반과 정치적 갈등 양산은 차치하고서라도 외교사에 참사 수준의 오점을 남기게 됐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공수처 수사 대상에 올랐던 인물을 해외공관장으로 발탁해 출국금지 해제 조치를 해 가면서까지 부임시켰지만 임명 25일 만에 사퇴에 이르는 초유의 사태를 야기했다. 외교적 결례와 국제적 망신을 자초한 사건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임명을 강행한 일련의 과정과 상황을 두고 억측이 난무하다.

윤 대통령은 국민이 납득하도록 그간의 과정과 사정을 소상히 설명하고 사과함으로써 임명 논란을 결자해지해야 한다. 차제에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이런 사태가 재현되지 않도록 인사 기조에 대해 숙고하고 인사시스템 점검에 나서야 한다. 공수처 또한 수사에 속도를 내야 한다. 이 대사가 사퇴한 만큼 이 대사를 즉시 소환해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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