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규 문학평론가
한정규 문학평론가

이 세상에는 모두가 강자요, 모두가 약자다. 그 사납기로 이름난 호랑이가 숲속에서 큰소리를 지르며 펄쩍펄쩍 뛴다. 그 모습을 보고 나무 위에 있던 다람쥐가 "호랑아 왜 펄쩍펄쩍 뛰는 거야? 내가 도와줄까?"라고 말했다. 그러자 호랑이는 꼬리를 흔들며 다람쥐에게 도움을 청했다. 다람쥐가 나무에서 내려와 호랑이 뒷다리를 봤더니 진드기 한 마리가 붙어 피를 빨고 있었다. 피를 빠는 진드기 때문에 호랑이가 미친 듯이 날뛰었던 것이다. 

또 다른 저쪽 깊숙한 숲속에서 수백 년을 비바람·눈보라와 함께 산 커다란 나무가 줄기며 가지를 흔들어 댄다. 가까이 갔더니 오래 된 고목나무 몸통에 딱정벌레가 붙어 진액을 빨고 있다. 고목나무가 딱정벌레에 꼼짝없이 당하며 몸을 꿈틀거리고 괴로워한다. 그 순간 호랑나비와 노랑나비가 날아와 딱정벌레에게 "자연생태계의 평화를 위해 진액 빠는 짓을 멈추라"고 꾸짖는다. 딱정벌레는 "생태계 평화도 좋지만 굶어죽을 수는 없지 않느냐"며 "나비 너희들이 딱정벌레 심정을 이해해 달라"고 한다.

그때 바람이 불었다. 나무가 몸통을 흔들어 가지를 휘젓고 딱정벌레를 후려쳤다. 딱정벌레는 나무껍질 속으로 몸을 움츠리고 숨는다. 곤충도, 동물도, 식물도, 그 어느 것 하나 예외 없이 삶에 고충을 겪는다. 반면 자기 생명을 위해 또 다른 생명을 빼앗는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작가 카뮈는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희망도 없다고 했다. 독일의 시인 에센바흐는 "고통은 인간의 위대한 스승이다"라고 했다. 고통 또는 절망의 필요성에 대해 말한 것이다. 곤충 또는 동물은 말할 것 없이 식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통과 절망을 겪는 것 필연이다. 딱정벌레에 진액을 빼앗긴 나무도 다르지 않다. 그 고통 때문에 삶에 대한 희망이 더욱더 강해진 게 명확하다. 다행히 딱정벌레는 거목 때문에 삶을 계속할 수 있었으며, 거목은 더욱 강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공생의 길로 접어들었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식물, 곤충과 달리 자신의 생명 유지만을 위해 다른 동물이나 식물의 생명을 죽이고 꺾어 버린다. 사람은 오직 자신의 삶만을 위해 날이면 날마다 식물·동물 가리지 않고 생명을 빼앗는다. 내가 살기 위해 너는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해, 그런 식이다. 

거목은 딱정벌레의 삶을 도우면서도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숨긴다. 그런 모습은 자연생태계에서만이 볼 수 있는 미덕이다. 그 미덕, 그 모습 자연생태계의 면면이다. 강자가 약자를 또는 약자가 강자를 먹잇감으로 서로가 서로를 먹잇감으로, 그래서 호랑이도 진드기에게 피를 빨리며 진드기 삶을 돕는다. 강자도 때로는 약자에게 물리고 뜯기고 그게 세상살이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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