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100여 년 전 미국 여류작가 ‘에드나 밀레이(Edna St. Vincent Millay)’는 ‘봄’이라는 시에서 "봄 너는 왜 다시 돌아오느냐?"며 순환과 적응,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고정된 진리는 없고 ‘좋은 게 좋다’는 동양적 사고와 맞물리는 표현이라고 본다. 어려움과 극복을 통한 아름다움(美)의 수용이 봄이 오듯 그렇게 우리 곁에 있음이다.

은행 지점장 시절 어려운 일에 직면할 때마다 개인 파일 맨 앞장에 1천여 년 전 남송(南宋)의 육유(陸遊)가 쓴 글귀를 적어 넣고 매일 다짐하듯 읽었다. ‘산중수부 의무로(山重水復 疑無路), 유암화명 우일촌(柳暗花明 又一村)’이란 시였는데, 대충 이해하면 ‘산길, 물길이 한없이 이어져 길을 잃었나 마음 졸였는데 그래도 그 길을 가다 보니 버드나무 울창하고 꽃이 환한 또 다른 마을이 나타나더라’라는 그런 희망적 메시지로 어려움을 이기고 나아가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얼마 전 부산에서 기업인, 소상공인, 어민들이 모여 중대재해처벌법을 다시 한번 검토해 달라는 집회를 하면서 시행 2년이 넘었지만 산업재해 예방 효과는 없고 사업자 비용 부담만 크게 늘어났다고 호소했다. 안전관리인력 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현장에서 사고가 나서도 안 되지만 대표자 처벌만이 기업 경영에서 희망을 줄 수 있는 사항인지 묻고 있다. 엄격하게 사고 예방을 주문하되 미적경영(美的經營), 미학자산(美學資産) 같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자의적 기업 성장은 국가, 사회의 희망과 공동선 추구, 동반성장의 요체가 됨을 주지시키고 실천에 옮기도록 장려해야 한다. 기업 경영은 순리와 이치에 따라 기다림과 소망을 이뤄 가는 그런 과정인 것이다.

2021년 국내 은행을 대표하는 몇몇 금융지주사가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적도원칙(Equator Principles)’에 가입하기 위해 신청, 심사를 받았으며 가입에 성공했다. 그렇다고 ESG에 대한 실천적 어려움을 타개할 선제적 방책이 됐을까?

얼마 전 ASML은 우리나라에 재생에너지를 더 써야 한다며 탄소 감축을 요구했다. 기후환경에 대한 제한적인 그들만의 옳고 바른 제안이지만, 최근 우리나라는 MIT가 발간하는 ‘MIT테크놀리지 리뷰:녹색미래지수(GFI) 종합평가’에서 75개국 중 8위를 차지해 세계적인 ‘그린리더’가 됐다는 보도를 접했다. 친환경에 대한 자생력이 있음을 보여 주는 결과지만 ESG 경영에 대한 속도 조절 역시 분명하게 요구된다.

2024년 3월 5일 미국 주요 은행 4곳(JP모건, 시티, 뱅크오브아메리카, 웰스파고)이 투자자 보호를 위한 금융업계의 자발적 협약인 ‘적도원칙’에서 탈퇴했다. 지구환경, 사회가치, 정도경영 같은 큰 개념도 중요하지만 기업과 투자자가 부담을 느끼는 점 역시 현실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는 게 ESG 과속에 대한 속도조절론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글로벌 대기업을 앞세운 친환경 전환 압박도 예사롭지 않다. EU에서 ‘공급망 실사법’이 부결된 것을 보면 최근 주요국들이 ESG 속도조절론을 들고 나와 글로벌 추세에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아직 ESG 데이터 표준이 정리되지 않았는데 재생에너지를 더 써야 한다고 압박감을 주는 일 역시 힘의 논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 ESG를 좀 더 우리 관점에서 세계화시키려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한 때가 왔다고 본다. 우리만 과속하다가 글로벌 모르모트(실험용 쥐)가 될 리스크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 우리가 대하는 ESG는 바로 이러한 덜 성숙된 여건에서 빠르게 어떤 타이틀을 얻고 싶어 하는 기업과 그럴듯하게 불안을 조성하고 선행학습을 부추기듯 수익 추구 이권의 틈새 전략이 맞물려 떨어진 현상이다.

‘투자자 보호’라는 명분의 결코 아름답지 못한 추세에 식민적 이슈, 종속이론 형태의 조종에 빠진 느낌이 든다. ESG보다 더 큰 화두가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ESG보고서, 중대재해처벌법 체크리스트 같은 선제적이고 종합적으로 보여 주기 위한 매몰비용이 ‘모르모트’로 회자된다.

그렇지만 최근 우리나라도 큰 흐름에 직접 반응하고 선제적으로 제도화해 주도적 경제연결성을 확보하려는 조짐이 보인다. 우리나라가 이만큼 성장한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이른바 ‘신(新)통상질서’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이나 EU가 던지면 사후에 대응책을 내놓고 비용을 지불하고 그랬었다. 기업들이 통상공무원이나 외교관 등을 영입하면서 먼저 대응 방식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누구를 위한 시간이며 비용인지를 좀 더 엄밀하고 주도적 자기 중심 관점에서 규제를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ESG에 대해 우리도 ‘자국우선주의’ 차원에서 대한민국 K-ESG 틀을 만들 필요가 생겼다. 우리에게는 유구한 반만년의 이슈가 있다. 바로 ‘홍익인간’이다. 두루 널리 인간에게 이로운 일을 해 나간다는 뜻이다. 지구환경과 사회적 가치, 정도경영을 넘어 우주를 아우르는 광대한 이슈를 글로벌 라이선스로 만들어 던져 보자. 어렵게 접근할 이유도 근거도 없다. 환경, 사회, 경영에 대한 근본가치만 강조해도 우리만의, 그러면서 세계적인 탄소 감축, 선한 동반성장, 정도경영의 기본계획이나 실천이 뒤따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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