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주 변호사
박노주 변호사

"대중을 섬기는 사람을 가엽게 여겨라. 그들은 고생만 죽도록 하고 아무에게도 존경받지 못한다."(괴테)

이 세상의 극악무도한 일들은 국가나 국민의 이름으로 또는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자신의 이름에 피를 묻히지 않고 명예까지 탈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명예가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이러한 역사는 계속됐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군중은 정치인의 가면극에 환호한다. 순한 양과 정의의 탈을 쓴 가면극을 현실로 착각한다. 자신의 운명이 달린 문제임을 깨닫지 못한다. 본 모습을 겨우 깨닫게 될 때는 그 나라가 이미 피폐해진 후다.

정치인도 군중도 원망하지 않는다. 국민의 운명이며 그 나라의 한계다. 그 도도한 흐름을 어찌 피하랴.

인간이 가까운 시일 내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서서히 개선되리라는 믿음은 버리지 못한다.

선진국을 바라봐도 그리 희망적이지는 않다. 인간의 한계다.

여론은 다수 의견의 집적일 뿐이다. 이러한 의견은 대부분 이기심이 내포됐다. 따라서 여론에 의한 정책은 소수자의 희생이 전제된 것이다. 사람들은 여론을 진리나 정의로 착각한다. 여론은 선동가들에 의해 좌우됨을 인식해야 한다.

포퓰리즘은 국민을 애완견으로 만드는 행위다. 실제로는 노예로 만드는 것이다. 권력, 재산, 명예 등 남용할 가능성이 있는 것들에 관해서는 제도적으로 제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스스로 남용을 절제하기를 기대하기에는 인간의 본성이 그리 선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용에 분노하기보다는 제도 보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 세상은 이분법적으로 설명할 만큼 간단하지 않다. 이분법은 자신의 주장을 부각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흔히 악용된다. 이분법적 주장을 접하면 의도된 내심의 목적을 간파해야 한다.

대중은 복잡한 논리로는 조직화하기 어렵다. 따라서 단순한 구호에 의한 흑백논리로 무장시킨다. 이것이 하등 정치인이나 정당의 활동 방식이다. 이렇게 조직화된 사람들은 마치 중대한 사명감이 있는 것처럼 광분한다. 자신에게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을 모두 적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사회는 진정한 평화나 정의가 유지될 수 없다. 이러한 점을 깨닫게 하는 것이 지식인의 사명이다.

정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같아야 한다. 국민 각자로 하여금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도록 하면서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화음을 만들어 내는 것이 유능한 정치다. 정치인 자신이 직접 북치고 장구치려 해서는 안 된다.

현재 정치판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이 그대로 표출된다. 좌우로 나뉘어 생사 투쟁을 하는 것이다. 정치판은 마치 투우장과 같다. 목숨을 걸고 깃발을 흔드는 투우사. 미친 듯이 내닫는 투우. 광분하는 군중.

무엇을 위한 투쟁인가. 국민의 행복을 위한 것인가, 정치인 자신이나 소속 정당의 이익을 위한 것인가. 후자가 아니라 전자를 위해 투쟁하는 정치인을 둔 국민은 지극히 행복하다. 우리는 어떠한가.

소수의 희생 하에 다수의 이익이 되는 공약을 내걸면 선거에 유리할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공산주의 국가의 운명을 생각하면 위와 같은 공약이 남발되는 사회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생존 투쟁과 적자생존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를 목격하게 된다. 상당히 실망스럽다. 누구를 위한 선거인가. 국정을 잘 처리할 사람에게 투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점이 더 많은 사람의 당선을 막기 위해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라면 나라의 앞날이 어둡다.

능력도 문제지만 자질이 더 큰 문제다. 능력 문제는 인사를 적절히 하면 극복 가능하다. 그러나 자질이 부족한 경우 능력이 크면 클수록 국가에 더 큰 해를 끼칠 가능성이 많다. 오만이 더해질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인사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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