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고양이 미로는 길이 85㎝의 코리안숏헤어(한국 토종 길고양이)치고는 기다란 체구를 가졌습니다. 단 한 번의 점프로 냉장고 위를 올라가는 미로에게 작은 단칸방은 어디든 놀이터가 됩니다.

2021년 8월. 처음 미로를 만난 곳은 안산시 한 주택가입니다. 당시 미로를 키우던 부부는 아이가 생겨 고양이를 분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미로는 전 주인 손을 떠나 제게 맡겨졌죠. 그때까지만 해도 앞으로의 여정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미로를 처음 만난 날, 등에 그려진 무늬가 마치 미로 같아서 ‘미로’라는 이름을 붙여 줬습니다.

하지만 제 작은 자취방이 낯설었는지, 아니면 전 주인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서인지 미로는 구석에 숨어 나오지 않았습니다. 걱정되는 마음에 사료, 츄르, 닭가슴살 큐브 등 각종 고양이 간식을 공양했지만 마음이 굳게 닫힌 듯 더욱 깊게 숨어 버렸습니다.

당시 8개월밖에 안 된 새끼 고양이 미로는 어느새 제게 다가왔습니다. 제 이불이 따뜻해 보였는지 이불 속으로 머리를 파고들었죠. 어쩌면 어미 품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미로를 분양한 지 2개월째인 생후 10개월. 이때를 ‘캣초딩’이라고 하나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집안을 뛰어다니는 미로 덕에 제가 아끼던 55인치 모니터와 선풍기가 부서졌어요. 미로가 강한 뒷다리 힘으로 박차고 올라가려 했기 때문입니다. 애들이 그럴 수도 있다고요?

중성화, 간식, 똥 치우기, 털 치우기 등 고양이 키우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적응했는지, 아니면 미로가 적응했는지 점점 같이 지낼 만하더군요.

지금은 어엿한 4년 차 성묘가 됐고, 자못 의젓한 모습을 보인답니다. 험난한 ‘캣초딩’ 시기를 지나자 작은 컵 하나 깨지 않는 착한 고양이가 된 거죠. 하지만 애교는 그대로 남아 모르는 사람에게도 머리를 들이미는 ‘개냥이’로 진화했습니다.

어찌나 애교가 많은지 이제는 사람을 만나면 머리부터 들이밉니다. 고양이가 머리를 들이민다는 것은 그냥 친구하자는 뜻이죠.

이런 미로를 보고 주변에서 고양이 키우겠다고 하면 저는 반대합니다. 동물을 키운다는 건 큰 책임이 동반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미로를 처음 만난 시기로 되돌아간다면 저는 미로를 분양할 겁니다. 미로와 함께한 추억은 제가 가장 힘든 시절을 위로했던 따뜻함 그 자체였거든요.

이제 미로 등에 그려진 무늬가 흐려져 더 이상 미로처럼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미로 하면 미로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가족이란 그런 거겠죠.

이두종(수원시 곡반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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