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7대 총선부터 도입된 정당명부식에 따라 유권자 한 명이 받아들 투표용지는 모두 두 장이다. 한 장은 지역구 후보를, 또 다른 한 장은 지지하는 정당을 선택한다.

얼마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제22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투표용지를 공개했다.

이번 총선의 비례대표 선거 투표용지는 4년 전 48.1㎝ 기록을 꺾고 역대 가장 긴 51.7㎝다. 갓 태어난 아기의 키가 50㎝라고 하니 사람 키(?)만 한 셈이다.

기나긴 투표용지가 세상 빛을 본 까닭은 준연동형 비례제 영향이 크다.

준연동형 비례제는 모든 국회의원 의석수 가운데 정당 득표율에서 지역구 당선으로 얻은 의석수를 뺀 나머지 절반을 비례대표 의석으로 보장하는 제도다. 정치 구도가 거대 양당 중심으로 형성되자 인지도가 부족한 신생·소수 정당의 국회 진입 문턱을 낮춰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고자 도입했다.

이번 총선에서는 정당 38곳이 국민대표로 국회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겠다며 비례대표 후보로 241명을 내세웠다. 

덕분에 선관위가 지난해 100억 원이 넘는 돈을 내고 들인 신형 분류기는 무용지물이다. 최대 34개 정당이 적힌 길이 46.9㎝ 투표용지까지 처리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 총선과 동일하게 개표사무원들이 직접 투표지를 검토하는 절차를 거쳐야 해 선거 결과 발표가 늦어질 전망이다.

비례대표 선거 투표용지는 의석이 없는 신생 정당들의 경우 가나다 순서로 정해지는 규칙에 맞춰 나열된다. ‘가가국민참여신당’과 ‘가가호호공명선거대한당’은 투표용지 앞 순서를 차지하려고 ‘가가’를 붙였으며, 이름 앞에 ‘히시태그’라는 뜻 모를 단어를 붙인 정당은 맨 마지막 순서를 차지했다.

이름이야 백번 양보해 유권자 눈에 들고자 붙인 이름이라고 여기면 그만이다. 문제는 공약조차 내세우지 않은 비례정당들이다. 공약은 정당과 입후보자가 당선될 경우 무엇을 할지 유권자인 국민에게 미리 약속하는 행위다. 

천번 양보해 두루뭉술한 공약이나 지키기 어려운 공약을 내세운 정당을 그들의 목표라고 여기기로 했다. 하나 그 어떤 공약조차 발표하지 않고 출사표를 던진 정당과 후보자들을 유권자인 기자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에는 물음표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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