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1899년 경인철도 개통 이후 1904년 경부선이 완공되고, 1906년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경의선이 부설됐다. 그리고 호남선은 서울∼목포 간 경목선으로 1911년 착공해 1914년 완전 개통했고, 경원선은 서울∼원산∼경흥(웅기)의 선로 1910년 착공해 1914년 완전 개통함으로써 한반도를 十자형으로 관통하는 철도망을 완성했다.

한일합병을 전후해 일제가 조선에서의 철도를 시급히 부설해야 했던 이유는 대륙 침략을 위한 군사적 차원과 식민지 경제 수탈이 전제됐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조선을 식민지한 이후 조선총독부는 물자의 원활한 수송을 위해 추가로 철도 노선을 건설하고자 했으나, 이미 위 4개 노선을 건설하느라 재정 여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이에 민간 자본인 사철(私鐵)을 건설한 뒤 이를 매수해 국유화하는 방법을 이용하고자 했다.

1914년부터는 사철 업체에 대한 보조금을 마련하되 조선총독부에서 사전 답사를 통해 지정한 ‘예정노선’대로 건설한 경우에 우선 지급했다. 이런 추세에 맞춰 1914년 이리∼전주 간 전북선 등이 협궤철도로 건설되기 시작했고, 1920년 조선 사철에 대한 보조금이 명문화됨으로써 더욱더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조선총독부가 사설 철도를 지방 개발의 한 축으로 설정함에 따라 일본 자본이 유입됐다. 사철은 일제의 침략정책에 협조하는 한편 토지·광산·창고 경영을 통해 지역산업 개발에 참여했고, 온천 개발과 유원지 건설 등 관광개발도 겸하게 됐다. 당시 철도 노선은 저렴하면서도 빠르게 건설하기 위해 ‘협궤’를 선택했다. 

조선경동철도주식회사는 수원에 본사를 두고 경기도 내륙지방의 철도·자동차·선박 운수업과 창고업 등을 하던 회사였다. 1920년 3월 수여선 협궤철도부설권을 획득했지만 이렇다 할 진척을 보이지 못하다가 일제의 보조금 정책에 힘입어 1930년 11월 30일 수여선을 개통했다. 수여선 개통은 여주·이천을 비롯한 내륙의 농산물 유통에 즉시 영향을 미쳐 호황을 누렸다.

1932년 경동철도사는 수인선을 추가 건설하고 수여선을 강원 내륙지방까지 연장하는 ‘인천∼강릉’ 간 동서 횡단 철도로 자사의 철도망을 확장한다는 구상을 수립했다. 이에 인천과 수원지역 상공인들도 수인선 부설 운동을 전개했고, 1935년 9월 수인선 부설 면허를 취득하고 1937년 8월 운행을 시작, 수원∼인천을 1시간 40분에 연결했다.

수인선은 개통되자마자 중일전쟁이라는 변수가 더해져 폭주하는 화물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였고, 옥련동 해변에 조성한 송도유원지 일대는 3.3㎡에 5전 하던 부동산이 하루아침에 5∼10원 오르는 등 투기가 판을 치기도 했다.  

수인선이 개통되면서 경기도 곡창지대 쌀이 인천으로 집산됐고, 인천지방 소금과 어물이 경기도 내륙으로 공급됐기 때문에 경기남부의 동서 간 도시 네트워크와 서민경제에 필수적인 농수산물 유통을 중심으로 서민생활문화를 형성했다. 나아가 통학과 통근 등 대중교통 수단이 됐고, 점차 관광을 떠나는 행락객이 이용했다.

그러나 인천의 염전산업이 쇠퇴하고 1977년 수인산업도로가 열리면서 수인선의 화물 운송 기능은 크게 약화했다. 표준궤 철로와의 직접적인 연결도 어려워 하역비 부담도 커졌다. 결국 구간이 단축되다가 1995년 12월 31일을 끝으로 수인선 협궤열차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현재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옛 송도역사(驛舍)에는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는 급수탑과 직진만 가능한 기관차가 종착역에서 차량 운행 방향을 바꾸는 철로 장치인 전차대(轉車臺) 등이 있다. 이 전차대는 수인선 종착역이던 남인천역이 폐쇄되고 송도가 종착역이 되면서 1973년 이전해 온 것인데, 최근의 발굴조사로 그 모습이 드러났다. 

현재 전국적으로 철도 관련 시설물은 급수탑을 비롯해 50여 점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송도역사의 낯설고 생소한 문화유산이 과거의 역사를 되새기고 새로운 추억을 남기는 창조의 공간으로 재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보존과 함께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로 거듭나기 위한 지혜가 모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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