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한국법치진흥원 이사장
이선신 한국법치진흥원 이사장

총선이 치러지기 일주일 전쯤 지인들과 식사를 같이 할 기회가 있었다. 총선이 목전에 다가온 만큼 자연스레 선거 얘기가 화제에 올랐다. A가 "정권 안정을 위해 여당인 국민의힘을 지지하려 한다"고 얘기하자 B가 "윤석열 정부에 실망해서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려 한다"고 얘기했다. C는 "난 세금을 깎아 주는 여당을 지지하려 한다"고 얘기하자 D가 "아파트값이 많이 올랐으니 세금 좀 내도 되는 것 아닌가? 난 세금을 더 내더라도 야당을 지지하려 한다"고 답했다. 

생각해 보면 부자들이 세금 내는 것이 아까워 여당을 지지하는 것은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문제는 가난한 사람들조차 선거에서 여당을 지지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이다. 빈곤한 자, 저학력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 변화를 도모하는 ‘진보의 편’을 드는 게 아니고 현실 유지를 도모하는 ‘보수의 편’을 드는 것은 아이러니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어느 사회에나 기득권층이 있기 마련이다. 기득권층이라고 해서 모두 비난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들이 이룬 부와 권력과 명예가 정당한 방법과 경로에 의해 성취된 것이라면 일반인들은 그들을 존경하고 닮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이룬 부와 권력과 명예가 부정한 방법과 경로에 의해 성취된 것이라면 그들은 비판의 대상이 돼야 하고, ‘부정의 카르텔’ 등 그들의 기득권을 깨뜨리고 약화시키기 위해 개혁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도 선거에서 기득권의 편을 드는 사회적 약자들이 많은 점은 아마도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 즉 계몽이 덜 된 탓일 게다.

모든 언론에서 선거 뉴스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이에 한쪽에 보도된 안타깝고 슬픈 뉴스가 눈에 띄었다. 지난 6일 서울 강동구 한 아파트 단지에서 90대 어머니와 60대 딸 2명 등 총 3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는 내용이었다. 그들의 집에서는 두 자매가 작성했다고 추정되는 유서가 발견됐는데, 치매를 앓던 노모의 사망을 비관하는 내용이 담겼다고 알려졌다. 경찰은 일단 이 자매가 자살한 것으로 봤다. 

이들의 사망 경위에 대해서는 자세한 조사가 이뤄져야 하겠지만, 일단 드러난 사실만으로 추측하더라도 이들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 얼마나 절망적인 상황을 맞았을지 짐작이 된다. 거리에서는 국민들의 행복 수준을 높여 주겠다고 총선 후보자들이 저마다 목이 터져라 외치며 선거운동을 하는 사이 이런 슬픈 죽음이 발생한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얼마 전 부활절을 맞아 여러 종교단체들은 저마다 성대하게 부활절 행사를 지냈다. 정부든, 지자체든, 친지와 이웃이든, 종교단체든 강동구 모녀들이 처한 절박한 상황을 미리 눈치 채고 따뜻한 위로와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는 없었을까. 안타까운 심정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한국자살예방협회는 4일 성명을 내고 "올해 통계청이 집계한 자살 잠정치(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1월 자살사망자는 1천306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987명)보다 32.3%(319명) 급증했다"며 "2021년과 2022년, 2023년 1월 각각 998명, 1천4명, 987명이었던 점과 비교하면 크게 늘어났다"고 했다. 

2022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살사망자는 1만2천906명이었다. 우리나라는 OECD가 통계를 작성한 이래 리투아니아가 OECD에 가입한 시기를 빼고는 줄곧 자살률 1위를 기록 중이다. 정부는 저출산·고령화만 해결하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실효적인 자살 방지 대책을 마련해 적극 추진해야 한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했다. 이번 총선에서 당선된 여야 정치인들은 모두 나서서 ‘인간의 존엄성’ 존중을 실천해야 한다. 앞으로 자살자가 발생하면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과 지자체장이 의무적으로 조문을 하고, 그 원인과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기를 희망한다. 대부분의 자살은 기실 사회적 타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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